재벌 후계자요? 우린 할 것은 하고 살아요!
재벌가 특유의 엄숙함 깨고 ‘마이웨이’ 선택해 주목
(시사저널=이석 기자)
재벌가(家)의 일상은 항상 베일에 가려져있다. 일부 총수나 후계자들이 SNS 등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하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독자 경영보다는 유학 후 부모 회사에 들어가 경영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재벌가 딸들은 더욱 그렇다. 경영권 승계 등 특정 이슈가 불거질 때를 제외하고 좀처럼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재계가 3세나 4세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런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이들은 재벌가 특유의 엄숙함을 고수하는 것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함을 선호한다. 경영 역시 부모에 의지하기보다 '마이웨이'를 선택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인 최민정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9년 8월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다. 국제통상과 정책 대응 전문조직인 인트라(INTRA) 부서 소속으로 미국 워싱턴과 서울을 오가며 근무했다. 비슷한 시기에 장남 최인근씨와 장녀 최윤경씨도 각각 SK E&S와 SK바이오팜에 입사한 만큼, 후계자 수업이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민정씨는 재벌가 후계자들의 전형적인 코스를 밟지 않았다. 그는 2022년 2월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 비정부기구(NGO)인 스마트(SMART)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지역 내 취약계층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을 하는 일이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심리건강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인티그럴 헬스'를 설립했다.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건강 관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리적 가격에 심리치료를 하기 위함으로 알려졌다.
벤처 사업가에서 걸그룹 연습생까지
자연스럽게 의문이 따른다. 안정적인 자리를 마다하고 왜 사서 고생을 하지? 민정씨가 그동안 보여왔던 행보를 보면 이 '홀로서기'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민정씨는 2014년 해군 사관 후보생으로 자원 입대했다. 최태원 회장이 회삿돈 횡령 혐의로 수감 중일 때여서 주목을 받았다. 2014년 소위로 임관한 민정씨는 청해부대와 서해2함대에서 근무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민정씨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정씨를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최씨가 최종적으로 고사하면서 정치권 입성은 무산됐지만, 민정씨의 '호감 이미지'는 재계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녀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의 경우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한때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인 루닛의 사외이사에 선입되기도 했다. 정 상임이사는 2013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 근무하다 아산나눔재단에 합류했다. 재단의 창업지원 공간인 마루 180의 운영을 총괄하는 게 정 상임이사의 역할이었다. 실제로 플리토와 드라마앤컴퍼니, 피스컬노트 등 유명 스타트업들이 마루 180에 입주하면서 투자금을 유치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광주요 CEO로 승진한 조태권 광주요그룹 이사회 의장의 차녀 조희경 대표도 그동안 본업과 무관한 한식 사업을 주도해 왔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지난해 말 주력 회사의 대표로 낙점받았다. 최근 (주)한진 수장에 오른 조현민 사장의 경우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을 출간하면서 동화작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연예계나 예술계에 진출한 여성 후계자도 적지 않다. 함영준 오뚜기그룹 회장의 장녀 함연지씨가 대표적이다. 연지씨는 14세 때 이미 12억원 규모의 오뚜기 주식을 상속받아 미성년자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주식 가치는 300억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연지씨는 후계자의 길을 걷지 않았다. 대원외고, 뉴욕대 티쉬예술학교를 졸업한 연지씨는 2014년 300대 1의 경쟁을 뚫고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CF 등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 한국어 더빙판에서 주인공 미라벨 역을 맡기도 했다.
부모와 다르게 자유분방한 행보 주목
연지씨가 대중에게 더 주목받는 것은 '햄연지'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이 공간을 통해 아버지인 함영준 회장과 쇼핑하는 장면이나 먹방 모습을 고스란히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연지씨는 지난해 12월 4년간 이어오던 유튜브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오뚜기가 미국에서 주최한 식품박람회에 얼굴을 내비치면서 경영 참여 가능성이 거론됐다. 오뚜기 측은 "공식 일정이 아니라 개인적인 참관"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연지씨의 자유분방하고 소탈한 모습은 대중에게 많은 울림을 줬다.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사장의 장녀 문서윤씨는 아예 걸그룹 데뷔를 앞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재학 중인 서윤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7만 명에 이르는 유명 인사다. '테디 걸그룹 연습생 사진'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최근 SNS에 퍼지면서 서윤씨의 걸그룹 데뷔 준비 사실도 알려지게 됐다. 해당 사진은 아이돌 그룹의 연습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여러 명의 걸그룹 연습생이 포즈를 취한 모습이었다. 서윤씨는 이 사진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여성으로 추정된다. 관련 사진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자 소속사인 더블랙레이블은 "상반기 데뷔를 목표로 걸그룹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막내딸인 구연수양은 예술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 구양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는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은 202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관에 24명의 한국 작가와 함께 출품하기도 했다. 이런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구양도 서양화가를 꿈꾸고 있다. 지난해 어머니와 함께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가수 싸이의 모습을 그린 작품 《PSY》를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룸살롱 피바다’ 만든 살인 중독자들의 여유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시사저널
- ‘反尹 천하’ 속 김건희 여사의 운명은? - 시사저널
- 종말론 심취해…달리는 차에서 두 딸 던진 인플루언서 - 시사저널
- 그 때의 180석과 지금의 175석은 다르다 - 시사저널
- 이준석·나경원·안철수…尹이 내친 사람들 모두 살아남았다 - 시사저널
- 아내 출산 틈타 자택서 지적장애 후배 성폭행한 20대男 - 시사저널
- “걱정 더 커졌다”…심판론 외쳤지만 못 웃는 의사들 - 시사저널
- “신체 접촉 안해” 약속하고 잠든 前 연인 성폭행 한 30대男 - 시사저널
- 2030년 인류를 위협할 ‘췌장암’ - 시사저널
- ‘왜 살이 빠졌지?’…티 안나게 살빼는 방법 3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