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된 폐병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함께 흐르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2024. 4.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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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브라운핸즈 백제·개항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
‘백제병원’ 개조한 브라운핸즈 백제
붉은벽돌 인테리어… 세월 흔적 가득
인천 이 이비인후과 개조 개항로점
1960년대 산업화 시대 반영 ‘모던’
백색 타일 ‘무균·위생’ 상징하는 듯

‘뉴트로(Newtro, New+Retro) 문화’가 확산하면서 쓸모를 다한 건물을 다시 쓰는 공간 재생도 늘고 있다. 처음에는 문화재급의 건물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으로 개조해 쓰다가 최근에는 공장과 쓰레기 소각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다거나 석유저장시설과 목욕탕을 전시시설로 사용하는 등 건물을 처음 지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용도로 바뀌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중 병원이 카페로 개조되는 사례도 있다.

지금은 동네 병원이 음식점, 편의점과 같은 근린생활시설과 함께 상가건물에 들어서 있지만 1960년대~1980년대 만해도 별도의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시 상가건물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해 의료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병원이 들어서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의사들의 수입으로 별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병원 규모가 클 필요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당시 활동했던 건축가들도 개인 병원 설계를 종종 했는데 김중업이 설계한 서산부인과 병원(현 아리움사옥)이 대표적이다.
시대가 지나고 역할이 바뀌면서 환대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브라운핸즈 백제와 개항로는 환자를 맞이했던 병원이었을 때의 기억을 품은 채 방문자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대개 이런 병원들은 당시 번성했던 원도심에 지어졌다. 시간이 흘러 병원을 짓고 운영했던 의사들이 은퇴하면서 건물만 남게 됐다. 문제는 병원이 있는 원도심이 쇠퇴해 건물을 매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지어졌던 2~4층 규모의 병원들을 특히 지방의 원도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도심에 남은 병원 건물을 주목한 건 카페였다. 건물이 지닌 과거의 흔적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크지 않은 돈으로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사람들이 원도심을 찾기 시작했다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작년 말까지 영업했던 카페 뎀셀브즈 망원점(옛 윤진열소아과)과 뵈르뵈르 안국점(옛 최소아과)이 있다. 그리고 지방의 사례로 브라운핸즈 백제와 개항로를 꼽을 수 있다. 브라운핸즈 백제는 1920년대에 개업한 부산의 ‘백제병원’을, 브라운핸즈 개항로는 2002년까지 운영했던 인천의 ‘이 이비인후과’ 건물을 개조한 카페다.

백제병원은 1927년 2월과 12월에 지어진 두 건물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특이한 점은 두 건물의 배치인데, 두 건물은 전면도로를 따라 나란하지 않고 25도 정도 틀어져 있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백제병원은 일본 오카야마의전(岡山醫專)을 졸업한 정형외과 전문의 최용해가 일본인 장인의 도움을 받아 개업했다. 서양의료진도 있었다고 하는데 영업 기간은 길지 않았다. 1932년에 병원은 문을 닫았다.
브라운핸즈 백제
이듬해 건물을 중국인 양모민에게 매각한 주체는 최용해나 그의 장인이 아닌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독점하고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국책회사다. 이 사실은 병원이 폐업한 이유가 병원 자체의 문제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건물을 매입한 양모민은 내부를 수리한 뒤 중국요리집 ‘봉래각’을 개업했다. 현재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방이 배치된 내부구조는 중국요리집으로 사용될 당시의 모습이다. 장사는 꽤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중국 대부분을 점령한 1942년 양모민은 봉래각을 폐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이 건물은 부산의 치안을 담당하며, 조선인을 징집했던 아카즈카 지대(赤塚支隊)의 장교 숙소로 쓰였다.

해방 이후에는 부산치안사령부, 중화민국 임시대사관으로 쓰이다 개인에게 불하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신세계예식장, 롤러스케이트장, 탁구장으로 사용되었다. 1972년에는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건물은 큰 피해를 보았다. 결국 부산시의 철거 명령으로 5층이 해체됐다. 두 건물 모두 붉은 벽돌로 지어졌지만 모서리에 있는 건물에만 화강암이나 다른 색 벽돌을 이용한 장식이 삽입돼 있다.
개항로
붉은 벽돌의 백제병원과 달리 브라운핸즈 개항로가 들어선 이 이비인후과 건물은 1960년대 산업화 시대를 반영해 기능적이고 모던하다. 타일로 마감된 입면에는 격자형 틀이 돌출돼 있는데 중간에 좁은 간격을 이루는 부분이 있어서 경직돼 보이지는 않는다. 이 건물은 준공 이후 줄곧 병원으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흔적과 물품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2층의 하얀색 정사각형 타일과 라디에이터는 병원이 추구했던 무균과 위생을 상징하는 것 같다.

브라운핸즈 개항로가 위치한 곳은 과거 ‘싸리재 고갯길(현 개항로)’로 불렸다. 이 길을 따라 포목점과 구두 가게들이 성업했는데, 1952년 인천기독병원이 들어서면서 의료타운이 됐다. 이 이비인후과도 그때 들어섰다. 지금은 의료기기를 파는 가게들이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카페가 된 병원 건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원은 다르지만 지향점이 비슷한 두 기능이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Hospital’(호스피털)의 어원은 손님을 뜻하는 라틴어 ‘hospes’에 ‘-alis’를 붙인 ‘Hospitalis’다. 뜻은 ‘환대’, ‘접대’인데 먼 거리를 이동한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데서 유래했다. 15세기에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이 생기면서 의료시설은 Hospital, 숙박시설은 Hotel(호텔) 또는 Hostel(호스텔)로 나뉘었다.
백제
어원만 보면 병원은 손님을 환대하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병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환대하고는 거리가 먼 차갑고 기계적이며 무겁다. 세균학, 마취술, 외과 수술 등과 같은 근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병원은 위생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이 확대된 이유도 있고 일상에서 분리된 죽음이 일어나는 장소가 병원이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병원 설계에 다양한 컬러를 사용하고 건물 내외부에 자연을 도입하는 이유도 환자의 감성을 고려한 환경으로 바꾸어 치유와 보살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면, 커피를 파는 집(Coffee-house) 또는 커피 자체를 의미했던 카페(Cafe)는 ‘지식의 학교’, ‘깨달음의 학당’이라는 뜻의 ‘Mekteb-i-irfan’(메크텝 이 이르판)이라고 불릴 만큼 낯선 사람들과 함께 앉아 오랫동안 토론과 논쟁을 하는 장소였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뒤에도 카페는 정보와 친교를 통해 시대의 공감을 이루었던 곳이다. 심지어 카페의 이런 기능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의 왕 찰스 2세는 카페의 수를 제한하는 칙령을 공포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나 상품을 넘어 삶의 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커피 비즈니스를 식음료업이 아닌 Hospitality(호스피털리티·접객) 사업으로 구분한다. 또한, 커피를 마시는 카페를 설계할 때는 손님들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고려해 세밀하게 디자인하고 있다. 결국 병원으로 쓰이다 카페가 된 브라운핸즈의 두 건물은 시대에 따라 변한 환대의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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