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생물 보호 위한 유전자 교정 등 인위적 개입 논란

박정연 기자 2024. 4.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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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생물 벌새. 게티이미지뱅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종을 장기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근친교배나 유전자 교정 등 인위적 개입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생물종의 예측 불가능성과 자연환경의 변수로 인해 기존의 생물종 보호 방식을 대체할 수 있을지, 생태계 전체에 위협이 되지 않을지에 대한 논란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15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많은 특이 생물종이 서식하는 호주를 중심으로 멸종위기종에 대한 유전자 변형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호주 대륙은 다양한 생물종의 생태를 연구하는 데 적합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사는 포유류, 파충류, 개구리종 중 90%는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체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생물 다양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연구하는 무대로도 주목받는다. 앞서 호주 대륙에서 일어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외래 침입종의 유입, 전염병, 기후 변화 등은 이 지역에서 극심한 생물종 다양성의 감소를 야기한 바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생물종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이들 동물의 유전자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종교배와 유전자 교정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현대의 환경 변화에 취약한 동물들의 유전자를 변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앤서니 와들 호주 맥쿼리대 연구원은 “우리는 생물의 진화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작업의 대상으로 주목받는 대표적인 생물종은 벌새다. 늪지대 숲을 잽싸게 통과하면서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 벌새는 인간과 산불이 이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1989년에는 겨우 50마리의 개체만이 남게 됐을 정도였다.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근친교배라는 방법만 남은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안전한 번식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전략으로 선회한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의 교배가 작고 폐쇄적인 사육장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폴 수넉스 호주 모나시대 연구원은 “벌새에게는 바람직한 교배를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전자 교정을 비롯한 유전자 변형 작업이 생물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더 적응력이 높은 벌새를 생산하기 위해 서로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아종(亞種) 간 교배를 할 경우 각 아종의 특성을 형성하는 유전적 요소가 혼란스럽게 섞이게 되면서 어떠한 생태계에도 적합하지 않은 잡종이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수넉스 연구원은 유전자 구조와 관련된 위험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부터 호주에서 실시된 벌새 교배 프로그램에선 벌새 아종 간 교배가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벌새 간 교배보다 더 많은 독립성 강한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작업이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전해졌다는 점도 유전자 변형을 통한 멸종위기 억제에 힘을 보탠다. 일례로 2015년에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위도에서 서식하는 산호들을 교배시켜 열에 견디는 능력이 더 높은 산호를 만들었다. 2020년에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알려진 유전자 교정 도구를 사용해 교배종에서 확인된 내열성과 관련된 유전자를 직접 교정했다. 이 연구는 최소 90종의 양서류 멸종에 기여한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키트리드 곰팡이에 저항하는 개구리를 만드는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복잡한 유기체의 생태계에 일어날 변화를 속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티파니 코쉬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연구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영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자의 변화가 또 다른 질병에 취약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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