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15] 귀걸이를 꺼냈다

교사 김혜인 2024. 4. 16.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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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아이와 일주일만이라도 떨어져 있으세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아이 주치의가 내게 이렇게 권했다. 병원 생활과 발달 평가 결과에 대한 면담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한데 치료 방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아이 주치의는 내게 다른 말을 했다. “어머님은 많이 소진된 듯해 보여요. 자신 삶이 없어진 것 같아요”라며 분리를 권했다.

병원에서 처음 아이 발달 문제를 확인받은 날부터 나는 곧바로 그 상태를 인정했다. 주변에 도움과 위로를 구해 왔다. 지치지 않으려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버릴 것은 버려 왔다. 그러다가 나도 버렸나 보다. 의사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직장 동료 결혼식을 핑계 삼아 아이 없이 혼자 꽤 먼 거리를 나서기로 했다. 예전처럼 좀 꾸며보고자 화장하는데 색조 제품이라곤 립스틱뿐이었다. 귀걸이를 한 지 너무 오래되었던지, 귓불을 뚫었던 곳이 막혀 귀걸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원피스를 입은 것도 어색했지만 옷장에 묵혀 둔 시간만큼 유행이 한참 지나서 더욱 꾸민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낮 홀로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결혼식장의 흥성거리는 분위기와 1, 2년 만에 만난 동료의 환한 미소가 좋았다. 그러나 “잘 지내시죠?”라는 인사에 “하하, 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해 어색하게 머뭇거렸다. 이럴 때는 결혼식이 순서대로 진행되어 하객이 바라볼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신랑의 긴장된 어깨와 신부의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며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떠올렸다. 옆자리에 앉은 직장 선배가 내게 결혼식 때 울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싱글벙글했는데 남편이랑 남편 친구가 울었노라고 말하고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때는 모든 게 찬란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어떠할지 몰랐다.

선배는 올해 결혼 22주년이 된다고 한다. 첫째 아이가 내년에 성인이 된다 하여 새삼 시간의 빠름을 느꼈다. 나는 올해 결혼 5주년을 맞았고 아이는 두 돌이 되었다. 이제 아이를 고작 2년 키운 내가 벌써 나를 잃어버린 게 우스웠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잡고 있다. 부모님이 그 곁에 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신랑 신부의 어머니도 곱게 단장을 했다. 저들도 때로 자신을 잃어버린 날이 있었겠지. 지금은 이렇게 아름답고 번듯하게 서서 온화하고 자신감 있는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내 휴대폰에는 아이 단독 사진이 가득하다. 간혹 남편도 있지만 내 사진은 거의 없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좀처럼 하지 않는 셀카 모드로 바꿔 보았다. 미소를 지어 보았지만 사진을 찍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시 귀걸이를 해야겠다. 조만간 단장하고 집 근처 사진관에 가야겠다. 아이 곁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어야겠다.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다.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모든 것이 찬란하리라.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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