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에 삼성 반도체 공장… 텍사스 시골마을, 황금시대 만났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미국 제조).’
미 정부의 삼성전자 보조금 발표 행사를 하루 앞둔 14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삼성전자의 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초미세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서는 ‘삼성전자 테일러 캠퍼스’의 사무동 정면에는 이 같은 문구가 쓰인 거대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축구장 682개(1200에이커) 크기와 맞먹는 초대형 캠퍼스 부지에는 수십대의 타워 크레인 사이로 대형 콘크리트 건물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부지 근처에는 LS일렉트릭, 반도체 화학약품 공급장치 제조 업체 한양이엔지, 반도체 생산장비 제조 업체 FST 등 협력업체가 빽빽하게 들어선 임시 트레일러 오피스들이 군락을 이루기도 했다.
이곳은 2026년부터 4나노 공정으로 인공지능(AI)·5G(세대 네트워크)용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게 될 1공장. 지금은 옥수수가 무성한 바로 옆 농지에도 곧 2나노 초미세 공정의 2공장과 반도체 첨단 후공정(패키징)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반도체 투자로 ‘천지개벽’ 테일러시
역대급 투자 발표에 인구 1만7000명 규모의 농촌 도시 테일러시는 들뜬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현지 매체인 테일러 프레스는 “테일러시의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르며, “예산 편성이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삼성의 합류로 도시의 미래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이날 삼성전자 캠퍼스 앞에선 지난 2022년 지역 당국이 삼성의 투자를 기념해 명명한 ‘삼성 고속도로(Samsung Highway)’ 표지판을 볼 수도 있었다. 옥수수밭을 갈고 새로 만들어진 이 도로는 테일러시와 인근 도시를 잇는 중요한 교량이다. 강춘자 오스틴 한인노인회장은 “삼성 반도체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유료 고속도로인 130번 도로만 있어서 테일러시로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며 “이제는 도로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새로운 타운하우스, 쇼핑몰들이 줄줄이 지어지며 지역 전체가 천지개벽 중”이라고 했다.
이날 삼성 테일러 캠퍼스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공터에는 ‘캐슬우드’라는 대형 타운하우스 건설이 한창이었다. 도로 맞은편에 테일러 고등학교가 위치한 이곳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주거 수요를 겨냥해 지어진 곳이다. 타운하우스 건설 붐은 테일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옆 도시 후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지난해 9월부터 삼성전자 직원들을 겨냥한 3만7500평 규모의 대규모 단독주택 단지가 지어지고 있다.
삼성 협력사들이 줄지어 근처에 사무실을 열며 오피스 임대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사무기기 유지보수 업체 아이마켓, 가스 배관 공급 업체 MSS인터내셔널 등이 지난해 12월 테일러시 인근 라운드락에 사무실을 냈다.
◇문닫은 극장도 재개장... 한인마트도 북적
테일러시 시내에서 유일하지만, 이용자가 적어 폐업한 ‘하워드 극장’도 삼성전자 투자에 따른 인구 상승을 감안해 재개장을 위한 모금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현지 매체인 오스틴 아메리칸 스테이츠맨은 “삼성전자 직원과 같은 안정적 고수입자가 늘어나며 인근 소도시들의 부동산 시장이 전에 없는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이미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오스틴 지역의 한인들도 들뜬 모습이었다. 오스틴 한인 인구는 1만2000여 명으로, 그마저 대부분은 텍사스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일 정도로 한인 사회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들어서며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오스틴 시내에 있는 미국 대표 한인 마트 ‘H마트’ 앞에는 ‘커밍 쑨’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삼성이 들어선 3년 전 오스틴에 첫 H마트가 생긴 후, 수요가 많아지며 2호점까지 열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각종 한식당, 삼성전자 출장자를 위한 한인 렌터카, 한인 민박 사업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지 한인회 관계자는 “캘리포니아부터 댈러스까지 여러 지역에서 한식당을 하겠다고 이주하는 한인들이 부쩍 늘었다”며 “새롭게 지어지는 쇼핑몰에 한식 입점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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