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 없애려 도입했는데…오심 담합을 하네?
면피에만 급급한 은폐 시도 대화 생중계, 무의미해진 ‘세계 최초 도입’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은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세계 최초’를 강조하며 도입한 가장 큰 변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하지 못한 ABS 도입을 KBO가 먼저 과감하게 나선 가장 큰 이유는 해마다 들끓는 오심 논란 때문이다. 심판의 눈을 기계의 눈으로 바꿔 최소한 일관되고 획일화된 판정으로 논란의 씨앗을 제거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ABS와 관련한 대형 논란은 결국 심판으로부터 나오고 말았다. 지난 14일 대구 삼성-NC전에서 ABS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심판의 입을 통해 ‘볼’로 바뀌었고 이와 관련한 심판들 간의 의심스러운 대화가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됐다. 듣고도 믿기 어려운 발언에 ‘설마’ 하면서 리그가 술렁이고 있다.
■ABS ‘스트라이크’를 ‘볼’로 콜, 명백한 실수…같은 타자 타석인데도 “어필 시효 지났다”
NC가 1-0으로 앞서던 3회말 2사 1루, NC 선발 이재학이 삼성 이재현을 상대로 던진 2구째 공에 문승훈 주심이 볼을 선언했다. 볼카운트 1-1이 됐고 이때 1루주자 김지찬의 도루 관련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다. 이후 이재학이 공 3개를 더 던져 풀카운트에 몰렸을 때 강인권 NC 감독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앞서 볼로 선언된 이재학의 2구째가 KBO가 제공한 ABS 확인용 태블릿에는 스트라이크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KBO가 도입한 ABS는 기계가 스트라이크·볼 여부를 판정하면 주심이 귀에 꽂은 ‘인이어’를 통해 음성으로 전달받아 콜을 한다. 현장 소음 등으로 인해 잘 듣지 못했다고 스스로 판단한 경우에는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확인한 뒤 정확히 콜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지난 13일 대전 한화-KIA전의 주심은 경기를 중단하고 구단 태블릿으로 확인한 뒤 최종 콜을 했다.
그러나 14일 대구 경기의 주심은 잘못된 콜을 했고,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해당 심판조 팀장인 이민호 1루심은 마이크를 잡고 “음성이 볼로 전달됐는데 ABS 모니터상 스트라이크로 확인됐다. NC측이 이 부분에 대해 어필했지만 규정상 다음 투구가 이뤄지기 전에 어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필 시효가 지난 것으로 봐 풀카운트 그대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ABS 판정에 따르면 이재현은 이미 삼진으로 물러나 이닝이 종료됐어야 하지만, 이재현은 그대로 타석에 섰고 경기가 중단된 8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던진 이재학으로부터 바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이재학은 이후 적시타 2개를 연달아 맞고 3실점, 1-3으로 역전당했다. 경기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규정상의 어필 시효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투수가 공을 던진 뒤 태블릿에 판정이 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 적용이지만 피치클록까지 도입해 투수들은 18~23초 안에 바로 다음 투구를 해야 한다. 더그아웃에서 투수가 던질 때마다 확인하기 위해 태블릿만 들여다보고 있는 ‘전담요원’이 있지 않은 이상, 명백한 콜 오류에 대해서는 어필 시효에 최소한의 융통성을 둬야 한다.
■은폐 모의 의심받는 심판 간 대화 노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면피?
기계의 오류가 아니라면 주심이 잘못 들은 것인데, 이날 KBO의 ABS 상황실 근무자는 해당 투구에 대한 기계 판정을 ‘스트라이크’ 콜로 들었다고 확인했다. 운영의 실수에서, 나아가 더 큰 화를 부른 것은 심판들의 ‘양심’을 의심케 하는 발언 때문이다.
곤란해진 이날 심판진은 한데 모여 논의했고 대화 내용이 공교롭게도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중 심판팀장이 “(ABS)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하세요. 아셨죠. 우리가 빠… 그거밖에 없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 생중계에 잡힌 것이다. 얼버무린 부분이 “빠져나가려면”으로 해석되면서 심판 잘못을 기계 오류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스트라이크’라고 나온 기계 음성을 현장의 소음 속에서 ‘볼’로 잘못 들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추후에라도 구심 본인이 인지했는지 여부가 이날 심판들의 대화 의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정말로 ‘실제 콜이 어떻게 나왔든 우리는 무조건 볼이라고 들은 걸로 해야 한다’는 ‘모의’의 취지였다면 굉장히 수치스러운 희대의 사건이다.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사람의 눈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기계로 다시 보는 비디오 판독에 이어 기계가 판정하는 ABS를 도입했지만 경기 운영은 여전히 심판들의 몫이다. 이민호, 문승훈, 최수원 심판은 모두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심판들이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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