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칼럼] 보수 궤멸 속 이준석의 국회 입성
생활밀착형 공약과 바닥훑기로
진보 강세 지역서 열세 극복해
도봉갑 김재섭과 큰 정치인 되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4·10총선 경기 화성을에 출마할 때 당선을 점친 이가 얼마나 됐을까. 똑똑하고 말 잘하면서도 버릇없는 젊은 보수 정치인 이미지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민감한 성별 이슈를 과감히 건드려 20·30대 남성의 강력한 지지를 받지만 여성의 등을 돌리게 한다. 한때 제3 정치세력 기대감이 높았으나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과 ‘이·조심판’ 대결 구도가 공고해지면서 존재감은 급격히 줄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전국 어디에도 지역구는 이 대표뿐만 아니라 이 대표 정당 후보들이 당선될 곳은 없다”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생활밀착형 공약과 바닥훑기식 선거운동의 힘이 아닌가 싶다. 화성을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이뤄진 곳이다. 신도시에 부족한 교육, 교통, 문화·예술·의료 3대 허브 구축을 슬로건으로 과학고 추진, 남동IC 설치, 시립미술관 및 어린이병원 유치처럼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다른 후보들과 성의가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별 맞춤형 공약은 압권이다. 100개 단지별 공약을 2분이 넘지 않는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비옷을 입은 채 “모든 아파트를 직접 가보겠다”면서 “춥다”고 말하는 인트로 장면과 지역구 공약에 이어 단지별 공약이 나온다. 둘레길 조성, 횡단보도 설치, 불법주차 문제 해소, 경관조명 설치, 하자 보수 등이 그것이다. 거의 임장 수준이다. 손편지를 직접 써 아파트 가구 우편함에 넣어 지지를 호소하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누비면서 인증사진을 찍으니 주민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 리 없다.
동탄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도시가 조성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토박이가 없다. 여론주도층인 향우회나 산악회, 친목모임 등 조직이 다른 지역처럼 그렇게 공고하지는 않다. 인물과 공약으로 충분히 공략해 볼 만한 지역인 셈이다. 이 대표가 서울 노원병과 대구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이곳을 선택한 건 전략적 판단이었다.
그로선 일생일대 모험이었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었으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탈당해 제3의 독자노선을 택했다. 스스로 의원 배지를 달거나 정당투표율이 3%를 넘지 못하면 정치생명은 끝날 수 있었다. 비례대표 앞번호를 받는 게 좀 더 쉬웠을 법하다. 국회의원 되기만을 꿈꿨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이제 그는 이번 총선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동시에 당선자를 낸 유일한 정당의 대표다. 인물난을 겪는 보수 진영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서사를 쓴 것이다.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영남과 강원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대패했다. 보수의 궤멸이라고 할 만하다. ‘영남 자민련’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민심은 그나마 서울 도봉갑에도 작은 씨앗을 남겨뒀다. 이 대표처럼 발로 관내 650㎞를 누빈 끝에 진보 강세지역에서 당선된 36살 김재섭이다. 그는 보수정치 복원을 위해 이 대표와 경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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