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진술 자청한 박희영, 거짓말 들통
검찰, 지시 담긴 문자 공개…“직원 동원해 대응 늦어져”
이태원 참사 책임으로 기소된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사진)이 재판에서 참사 당일 구청 공무원에게 ‘대통령 비판 전단 수거’ 지시를 해 사고를 키웠다는 공소사실을 직접 부인했다가 증거로 반박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참사 직전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올린 이태원 현장을 우려하는 말이 ‘클럽발 코로나’를 우려한 것이라며 인파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 구청장은 15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 심리로 열린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재판에서 이렇게 밝혔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근처에서 열린 대통령 비판 집회에 뿌려진 대통령 비판 전단을 수거하라고 지시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김진호 용산서 외사과장에게 (전단을 수거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우리(구청) 업무인지는 모르겠으나 알아보라고 전달한 것이지 지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그간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의견 등을 밝혔는데 이날은 이례적으로 의견 진술을 자청했고 재판부의 심문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검찰은 박 구청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재판에서 공개된 용산구청 직원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대화 내역을 보면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9시쯤 직원들에게 “김진호 용산서 외사과장(에게) 빨리 전화하세요. 강태웅(당시 더불어민주당 용산 지역위원장) 현수막 철거도 부탁해요”라고 지시했다. 이에 용산구청 직원은 “민주당 현수막은 전부 새벽에 제거 예정입니다. 시위피켓은 당직실 통해 바로 제거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당초 용산구청 직원들이 용산서의 전단 수거 요청을 거부했지만 이후 박 구청장의 지시를 받고 전쟁기념관 인근에 가서 전단 수거 작업을 했고 이로 인해 인파 밀집 사고 대응이 어려웠다고 보고 있다.
‘구청 업무인지 모르고 전달만 했다’는 박 구청장 주장은 앞서 검찰에서 한 진술과도 배치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박 구청장은 지난해 1월 검찰 피의자 신문에서 “그것은 시켰다기보다는 용산서 과장한테 전화가 왔고 전단을 수거해야 하는데 엄청 많다고 했고, 그게 구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구청장은 사고가 임박했을 무렵까지도 인파사고를 인지하지는 못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9시6분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전 통일부 장관)이 함께 있는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 “이태원은 할로윈으로 난리라 신경 쓰이기도 하구요” 등의 글을 남겼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가 어떤 취지로 한 말인지 묻자 “클럽발 코로나가 발생할까봐 걱정됐다”고 답했다. 그는 ‘이태원이 신경 쓰인다고 했으면 현장에 나가 눈으로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재판부 질문에는 “일단 정리를 좀 하고 나가려고 했다”면서 “비서실장에게 보고받고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차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10·29 이태원참사 태스크포스 소속 최종연 변호사는 “인파 대책을 세우거나 행정 협조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코로나 때문이었다고 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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