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가 아닌 대응으로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요”
상황 마주하는 태도 중요
자신의 의견 명확히 전달
상황극 통해 자신감 키워
미국의 자기방어 전문가 엘런 스노틀랜드는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개의 크기가 아니라 내면의 투지가 얼마나 큰가이다”라고 말했다. 자기방어훈련은 말하자면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하는 능력, 그에 따른 내면의 투지를 키움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특히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자기 표현을 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여성 청소년들에게 자기방어훈련은 위기 대응 능력과 자신감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2011년부터 10대 청소년 및 성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기방어훈련을 꾸준하게 해온 ‘피프티핏’ 운동센터 박은지 트레이너에게 자기방어훈련에 대해 들어 봤다.
-자기방어훈련이란 무엇인가.
“‘자기방어’라고 하면 범죄 상황에서 몸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거칠게 싸우는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방어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기다. 여기서 위험은 신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일상 속 갈등 상황도 포함된다. 자신이 불편하거나 위협을 받는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얼어붙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청소년 대상으로 자기방어훈련을 많이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 청소년이 상대적으로 자기 방어력이 약한 이유가 단순히 힘이나 체격에 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성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반격할 수 있는 몸이라고 여기거나,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험을 상대적으로 많이 하지 못하며 자란다. 그러다보니 위기 상황에서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고, 상대를 지나치게 신경 쓴 ‘쿠션어’(부탁이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 이를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화법)로 자기 주장을 희석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방어훈련을 진행할 때 자기 의견을 상대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언어적인 기술을 연습하기도 한다.”
-자기방어훈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내 경우에는 ‘자기방어훈련’이라는 용어 순서대로 제일 먼저 ‘자기 발견’의 시간을 갖는다. 자기방어를 위해서는 정신적인 자존감과 자신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청소년의 경우 자신의 몸과 자기 가치를 지나치게 동일시한다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로 자기 긍정성이 낮아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몸을 잘 돌보고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을 배우는 워크숍을 먼저 진행한다. 다음 단계인 ‘방어’에서는 내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는지, 내 체력 수준은 어떤지,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등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대응 방법을 배워본다. 마지막으로 훈련 단계에서는 상황극을 통해 대응 연습을 해보고, 신체 훈련도 한다.”
-어설프게 대응하다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자기방어훈련 때 자주 하는 게 버스정류장 상황극이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혼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 어떻게 할지, 역할을 나눠 연습해보는 거다. 한 가지 방법은 상대를 못본 척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거고, 다른 방법은 등을 보이지 않고 상대 행동을 살피면서 일정 거리에서 방어 태세를 취하는 거다. 참여자들은 공격자 역할과 기다리는 사람 역할 두 가지를 직접 해보는데, 본인이 공격자일 때는 상대가 자기 행동을 주시하면 좀 더 주저하게 된다고 공통적으로 얘기한다. 반대로 기다리는 사람은 조금 겁이 나더라도 상대를 관찰하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할 때 오히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얘기한다. 물론 자기방어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상대에게 ‘네가 나를 건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상황극 훈련을 통해서 위기 상황에서 무작정 회피하기보다는 대응을 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감각, 나도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신체적인 방어 기술은 어떻게 배울 수 있나.
“자기방어훈련에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데 유리한 몸의 구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 팔과 다리를 어떻게 펴고, 어떤 식으로 움직일 때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기술은 자전거 타기를 배워두면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는 것처럼, 한번 배워두면 이후에도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과 잘 타는 것은 다르듯, 방어 기술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여성 청소년이나 체구가 작은 사람이 배우기에 적합한 호신술로는 주짓수와 유도가 있다. 신체 접촉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크라브마가나 태권도도 좋다. 달리기도 많이 추천하는 편이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달리는 속도도 빨라지지만, 내가 누군가를 앞지를 수 있고 시간을 벌어서 도망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방어와 관련해 여성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자기방어훈련 참가자 중 한 명이 이런 소감을 전한 적이 있다. 자신은 누가 언제 공격할지 몰라서 늘 두려움에 떨었는데, 상황 판단의 세 가지 요소인 ‘환경’ ‘공격자’ ‘나 자신’ 중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돌보고 체력을 기르는데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 말처럼 살면서 어떤 일이 닥칠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을 마주하는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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