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기업인 자부심, 어디로 갔나

황인혁 기자(ihhwang@mk.co.kr) 2024. 4.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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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놈펜 출장 때 만난 캄보디아 기업인들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캄보디아 왕실이 부여한 귀족 계급 '옥냐'를 상징하는 것으로, 정부에 거액을 기부한 기업인들에게 주는 영예로운 칭호다.

한국에선 기업인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세계 5대 강대국을 염원하는 한국이 캄보디아보다도 기업인을 홀대하는 나라로 비쳐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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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부여하고 상속세 없애니
캄보디아 기업인들 사기 충만
한국선 경영자가 동네북 신세
국정운영 주도권 쥔 민주당
국가생존 위해 전향적 자세를

지난달 프놈펜 출장 때 만난 캄보디아 기업인들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정장 왼쪽 가슴에는 커다란 황금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캄보디아 왕실이 부여한 귀족 계급 '옥냐'를 상징하는 것으로, 정부에 거액을 기부한 기업인들에게 주는 영예로운 칭호다. 거물급 경영자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대신, 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되어달라는 국가 차원의 주문이기도 하다. 또 캄보디아에선 상속·증여세가 없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죄의식을 기업인에게 심어주지 않는다.

한국에선 기업인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죄인 취급 안 당하면 다행'이라는 패배적 정서가 만연해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연일 부르짖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단순히 법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기업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호소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A사는 2022년 중대법 시행 이후 현장 안전관리자를 종전 300명에서 500여 명으로 대폭 늘렸다. 혹여나 사람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안전점검 강도를 높였는데도 얼마 전 인명사고가 발생해 고강도 수사에 시달리고 있다. 근로자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대표와 안전책임자에게 사법적 철퇴를 가해 형사처벌로 내모는 중대법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정부가 요구하는 안전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데 소상공인은 현실적인 대응이 어렵다. 이들은 22대 국회가 열리면 중대법 유예를 재추진하려 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175석을 쓸어담는 바람에 법 개정이 물 건너갔다고 푸념하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사기가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다.

기업인들이 그토록 바랐던 상속세 완화는 또 어떤가. 정부가 7월 세법 개정을 추진할 태세이지만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민주당의 견제에 무산될 공산이 크다. 징벌적인 상속세 폭탄에 상당수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은 어찌 손쓸 도리가 없다.

오죽하면 현대자동차가 협력업체들의 회사 매각으로 진퇴양난에 빠질 지경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회사를 처분하는 현대차 협력사가 속출하면서 부품 공급망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보조금 전쟁을 보면 이들 강대국이 첨단 반도체기업 유치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짓는 대만기업 TSMC에 10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안겨주기로 했다. TSMC 1공장에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정책을 총동원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만한 '칙사대접'이 없다.

반면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들어보면 한숨만 나온다. 모 대표이사는 "투자를 애써 검토했더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기부 방안을 달라고 요구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기존 관행에 매몰된 공무원들의 '레드 테이프(red tape)'에 절망한 기업인들은 "이래서 해외로 안 나가면 바보"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김건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국회의원 당선인들에게 바란다. 개인적인 한풀이에 몰입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총선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수권 능력을 입증하려면 민생을 살리는 정책, 기업인의 자부심을 되살릴 카드를 여당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야당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게 됐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세계 5대 강대국을 염원하는 한국이 캄보디아보다도 기업인을 홀대하는 나라로 비쳐선 곤란하다.

[황인혁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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