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RL' 공시 분류법, ESG 산업 재편한다

이승균 2024. 4. 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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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ESG 리포트
글로벌 공시 표준
ESG 정보 디지털 전환 속도
XBRL 활용하면
정보 수집과 유통 속도 빨라
ESG 평가·투자 지형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 할 것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1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OECD 라운드테이블: 아세안의 디지털 금융에 관하여’에서 카르미네 디 노이아 OECD 금융기업국 디렉터와 대화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 요구사항(IFRS S1)과 기후 관련 공시(IFRS S2) 정보를 디지털로 전환한 뒤 활용하기 위해 ‘지속가능성 공시 분류법’을 마련한다. IFRS재단은 최근 회의를 통해 올해 4월까지 지속가능성 공시 분류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속가능성 공시 분류법은 지속가능성 정보를 디지털 방식으로 공시하는 방법과 절차를 다루는 기술 문서다. IFRS재단은 해당 문서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관련 협의를 이어왔다. 확장성 경영 공시 언어(XBRL·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를 기반으로 투자자에게 필요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XBRL, 재무제표 이어 ESG 정보로 확대

그간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는 유통이 어려웠다. 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줄글 중심의 맥락 정보에서 정형화된 정보를 추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기업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부록에 정량 정보를 한데 모은 팩트북을 담기도 한다.

IFRS재단은 IFRS S1·S2 공시 데이터를 디지털로 추출해 유통하면 투자자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FRS재단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 초안을 마련한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도 올 3분기 이내에 관련 공시 분류법을 마련해 유럽증권시장당국(ESMA)에 제출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와 EFRAG는 공통 공시 항목에 대한 XBRL 기반 코드를 일치시키는 작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단위, 배출 기간 등이 담긴 데이터를 동일한 XBRL 코드로 다루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 번의 XBRL 공시로 ESRS와 IFRS S 공시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IFRS재단은 2025년 IFRS S에 지속가능성 공시 분류법을 적용,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2027년 1월 이후 기업 공시에 이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XBRL은 이미 재무제표 공시에 범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에 XBRL이 활용되면 ESG 데이터 산업의 지형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저렴한 비용으로 ESG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RS 재단과 유럽 등이 XBRL 기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마련하면 정보수집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사용자가 많은 양의 정보를 일시에 찾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 수집과 관련해 기존 관행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김갑제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 선임은 “XBRL 공시 기반이 마련되고 실제 기업 공시가 이뤄지면 유가증권시장 전체 상장사의 개별 스코프 1·2(온실가스 직간접배출량) 정보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조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등 금융 데이터 사업자가 ESG 정보 유통을 위해 막대한 인원을 채용하고 각 국가 파트너에게 비용을 지불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관행이 바뀔 수 있다. 데이터 수집 비용 감소는 ESG 평가, 투자와 관련한 데이터 산업도 크게 육성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재무 데이터 전산화가 이뤄지면서 재무 데이터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것처럼 지속가능성 데이터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제는 AI 기반으로 ESG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게 돼 더 큰 성장이 예견된다”고 설명했다.

 ○공시 데이터 추출, 비교 편리해져

또 IFRS 지속가능성 공시 분류법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를 투자자가 더 쉽게 추출하고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계층·산업별 구조로 설계되고 있어 정보 비교가 용이하며, 공시 의무화와 맞물리면 ESG 투자를 촉진하고 기업 ESG 경영을 자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XBRL 기반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 데이터와 맞물리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매출 1조원 이상 제약산업에 속한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 하위 10% 기업을 일시에 추출해 장기간 재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ISSB는 기업에 지속가능성 정보를 재무 정보와 함께 동시에 공시할 것을 요구하며, 최종적으로 XBRL을 기반으로 재무와 지속가능성 정보를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IFRS재단은 서술형 정보의 일부도 정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관련 성과지표가 보상 정책에 포함되는지 여부(IFRS S1 13번 항목)를 ‘예’ 또는 ‘아니오’ 방식으로 구성하고 기후변화 관련 물리·전환 리스크를 표준화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특히 계층화된 XBRL 문서는 산업 간 비교를 돕는다. 산업, 주제, 단위 등 메타 정보가 XBRL 문서에 상위 하위 코드로 포함된다. 전 세계 IT 기업이 공시한 에너지 소비량, 재생에너지 사용량,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성 등 정보를 손쉽게 비교할 수 있다. ESG 평가업계 관계자는 “XBRL은 정보의 비교 가능성뿐 아니라 데이터 호환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정보 교환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ESG 평가에서도 많은 질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적용은 언제?

XBRL을 기반으로 한 공시가 ESG 경영과 투자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지만 국내 도입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한국형 지속가능성공시기준(KSSB)도 마련되지 않아서다. XBRL 관련 일정도 수립되지 않았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주요국의 ESG 공시 일정을 고려해 ESG 공시 도입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래소 공시와 법정 공시 일정이 확정되고 공시 항목이 구체화된 후 XBRL 기반의 지속가능성 공시 계획이 수립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은 XBRL 기반 재무 공시의 단계적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고 2023년 사업보고서부터 XBRL 적용 범위를 본문에서 주석으로 확대했다. 금감원은 XBRL 기반으로 수집한 기업 재무 정보는 자체 플랫폼인 ‘오픈 다트’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향후 XBRL 기반으로 수집된 지속가능성 정보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 사용자에게 제공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ol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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