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토크] 팽목항을 지키는 부모들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일. 해가 지자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 부둣가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안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세월호 인양 전. 당시 아직 딸을 못 찾았던 박은미 씨(故허다윤 어머니)는 청와대와 서울 시내에서 피켓을 들고 딸을 찾아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고?"라는 말을 하며 지나갔다. 이금희(故 조윤화 어머니)씨는 한산해진 팽목항을 지키고 있었다. 2017년 4월 11일 2017년 3월 22일에 시작된 세월호 인양이 4월 11일 육상 거치 작업을 마지막으로 참사 1091일 만에 완료되었다. 세월호 육상 거치에 따라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색 체제로 전환 및 사고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7년 9월 22일 단원고 2학년 조은화, 허다윤 양의 이별식이 23일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세월호 인양 후 허다윤 양은 세월호 참사 발생 1129일 만에 신원이 확인되었다. 허다윤 양은 세월호 참사 당시 헬기가 구조하러 온 순간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순서를 양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1월 18일 참사 발생 1312일째,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을 위한 합동추모식이 목포신항에서 열렸다. 선체 인양 후에도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군, 단원고 양승진 교사, 권재근 씨와 권혁규 부자 등의 유해가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목포신항을 지키고 있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철수를 결정했다. 2024년 4월 안산 화랑유원지,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 설치되어 있던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는 2018년 4월 16일 합동 영결식을 기점으로 하나씩 철거되었다. '416 팽목기억관'도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故 고우재 아버지 고영환 씨가 오랫동안 지켜냈다. 이후 고영환 씨의 교통사고로 상주가 어려워지자 30여 명의 유가족들이 매주 3명씩 조를 짜서 '416 팽목기억관'에서 머무르고 있다. |
참사 10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상흔이 서려 있다. 빨간 등대와 방파제의 수많은 노란 리본들, 기억의 벽과 추모 조형물들이 남아있다. 방파제 옆으로 작년 여름에 운영을 시작한 진도항 연안여객터미널 건물이 들어왔고, 넓은 터미널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을 벗어나면 비포장 공터,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주검이 처음 수습됐던 자리에 '4.16 팽목기억관'이 컨테이너 형태의 임시 건물로 조성되어 있다. 컨테이너 건물은 10년의 세월에 녹이 슬었고, 비가 오면 입구까지 물웅덩이가 고일 정도이다. 내부 한 벽엔 희생자들의 사진이 붙어있고, 그 앞엔 추모객들이 놔둔 편지, 그림, 과자와 꽃들이 놓여있다.
박정하/ 故 조은정 학생 어머니
"거기는 아픈 곳이라 안 가고 싶으면서도 가야 된다는 그런 마음. 거기 가면 우리 아이들이 죽음으로 올라온 곳이거든요. 그 부둣가에 가면 자꾸 옛날 우리 아이들이 올라왔던 그때가 생각이 나고. 그 바람 소리, 그 파도 소리 때문에 가슴이 좀 아프죠."
안산에서 출발한 박정하 씨는 팽목항에 6주에 한 번 정도 간다고 한다. 대략 2박 3일의 일정. 팽목항까지는 410km. 5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유가족들은 늦을까 봐 아침 일찍 길을 나서고, 휴게소에서 거의 쉬지도 않는다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도착한 팽목항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족들은 비를 뚫고, 물에 빠져가며 '416 팽목기억관'으로 들어간다. 추모객들이 볼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자를 입구에 놓아둔다. 추모객들을 위해 내부를 청소하고 정리한다. 추모객들은 여전히 하루에 몇 팀씩 이곳을 방문한다.
"난 마음 아파서 보기 싫어."
"여기 눈물 나려고 한다."
"애들 얼굴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머리에 박혀 가지고…"
"너무 예쁜 나인데…"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안 오네."
"살아있으면 내 아들이랑 같은 나이…"
4명의 추모객들은 '416 팽목기억관'에서 대화를 나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온 손태숙 씨는 친구들끼리 진도 여행을 왔다가 팽목항이 보이길래 방문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는데 점점 잊혀지는 것이 아쉽다며 고개를 떨군다. 함께 온 지인들은 입구에서 발걸음을 주저했다.
'416 팽목기억관' 주변에는 3개의 컨테이너가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진도 성당'이라고 쓰인 컨테이너이다. 이곳은 2014년 4월 20일에 천막 형태로 처음 생겼다. 진도군의 한 부부가 이곳에서 매일 미사를 드린다. 교통사고로 병원을 입원했던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김영례/ 진도군 주민
"여기가 처음에 올 때는 그냥 기도해 주러 왔죠. 와서 보니 정말 슬프더라고요. 여기 가도 울음소리, 저기 가도 울음소리. 거리마다 고개를 숙이고, 입도 못 벌리고, 이렇게 울고 있으니깐. 여기가 너무 슬픈 곳이구나. 참 마음이 아프다."
김영례, 손인성 부부가 몇 년이 지나서 '그만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면 밤에 꿈을 꾸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을 기도하게 되었다. 우리가 취재했던 날은 세월호 유족들도 함께 기도했다. 그들이 서로 안고 위로하고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 손 모아서 기도하고 성경을 낭독했다.
이정숙/ 故 권지혜 학생 어머니
"10년 전하고 또 지금 하고 차이가 있죠.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옛날 어른들 말이 있잖아요. 세월이 지나면 잊는다고 그랬지만 자식이니까 잊을 수는 없고.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기도 하죠. 그렇지만 내 아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는 않고."
지난 14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바람은 작은 걸음을 내디뎠다. 전남 진도군은 옛 조도행 여객선 매표소 옆에 40㎡ 규모의 세월호 기억공간을 조성하자는 시민단체 쪽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416 팽목기억관' 컨테이너 구조물은 철거하고,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세월호 첫날, 팽목항을 기억한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참 젊었다. 10년이 지나서 만난 부모들의 얼굴엔 주름과 세월이 묻어있다. 팽목항은 이제 진도항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이곳에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낡아가고 있다. 컨테이너 공간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얘기를 나눈다. 낡지 않는 기억을 간직한 채로 팽목의 밤을 보낸다.
(영상취재 : 하 륭)
하륭 기자 r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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