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산비중 90% 뚫은 배터리…수출은 8년만에 첫 감소
지난해 한국의 이차전지 수출이 8년만에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약화 때문이 아닌,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결과다. 다만 업계에선 중국 기업과의 경쟁 격화와 전기차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등 도전적 요인에도 대비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15일 발간한 '이차전지 수출 변동 요인과 향후 전개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차전지 수출은 98억3000만 달러(약 13조6000억원)로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2015년 이후 전년대비 첫 감소다. 지난해 이차전지 수출은 국가 전체 수출의 1.6%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 품목중에선 8위였다.
국가별로 독일로의 이차전지 수출 감소폭이 34.7%였다. 폴란드와 베트남 수출도 42.6%, 38.9% 줄어 감소폭이 컸다. 미국으로의 수출은 16.7% 늘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이차전지 수출 단가는 최근 9개월 증가세를 유지했다"며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수출 물량이 크게 줄어들며 수출이 부진했다"고 말했다.
무역협회는 수출 감소가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약화 탓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도원빈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배터리 수출이 감소한 것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아닌 해외 생산 확대에 따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해외 생산 설비 투자와 생산량 확대로 수출 구조 변동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의 해외생산 비중은 92.4%로 조사됐다. 업체별로 해외 생산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SK온으로 95%였다. LG에너지솔루션(91.3%)과 삼성SDI(89.7%)가 그 뒤를 이었다. 해외 생산 확대를 위한 해외 직접투자도 증가세다. 지난해 1~9월 축전지 해외직접투자액은 38억달러로 전년보다 40.8% 늘었다. 이는 2022년 연간 투자액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와 맞물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주요 생산 거점인 헝가리와 폴란드의 이차전지 수출 금액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3년 1~9월 기준 세계 이차전지 상위 5대 수출국 중 수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헝가리(66.2%)와 폴란드(65.9%)로, 중국(32.4%)을 크게 상회했다. 폴란드는 LG에너지솔루션 총생산의 47.5%, 헝가리는 삼성 SDI 총생산의 77.1%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 거점이다.
해외 생산확대는 한국 배터리업계 성장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한국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의 글로벌 사용량은 전년 대비 29.6% 증가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글로벌 순위도 모두 5위권 내에 안착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6.4%로 2위였다. 삼성SDI(7.8%)와 SK온(7.5%)은 각각 4위, 5위였다.
무역협회는 올해 하반기 중 미국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전기차·배터리 수요 회복이 예상돼 이차전지 산업도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중국산 배터리 견제로 우리 기업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도 내다봤다.
하지만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에 따른 배터리 수요 둔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보고있다. 일시적 전기차 수요 둔화 시기가 끝나야 해외 생산설비 확대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캐즘이 길어질 수록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경쟁이 격화될 우려도 커진다는게 업계 시각이다. 무역협회도 이번 보고서에서 해외생산 확대 외에 이차전지 수출 변동 요인으로 △중국기업과의 경쟁 △전기차 수요 둔화를 꼽았다.
도원빈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안정적인 공급망의 구축을 위해 국내 이차전지 제조시설의 확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IRA를 통해 자국 배터리 제조시설에 30%에 달하는 투자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도 경쟁국과 동등한 투자 환경 제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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