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땐 최악...“중동發 ‘아마겟돈’ 막자”

2024. 4. 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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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지정학
이란, 사상 첫 이스라엘 본토 폭격
“방어적 조치” 확전 원치는 않아
당장은 상황 관리하는 쪽에 무게
이스라엘에 중동 상황 열쇠 분석
유가 배럴당 130弗 치솟을 수도
韓, 중동 원유 의존도 70% 넘어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전시내각을 구성하는 베냐민 네타냐후(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해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을 포함한 각료들이 텔아비브에서 보여 수시간에 걸쳐 이란의 공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 회동에서는 상당수의 각료가 보복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대응의 시기와 강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추후 전시내각 회의를 다시 소집할 것으로 알려졌다. [AFP]

“(보복 공습) 작전이 성공했다. 이스라엘 정권이 이란 땅에 군사 공격을 가할 경우 두 배의 전력으로 대응하겠다.”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과 이란 혁명수비대 한 고위 사령관)

“이번 공습에 대해 상응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자유세계의 모든 가치를 말살하려는 ‘악의 제국’을 만나고 있다.”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

전 세계를 종말 수준의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표적인 ‘아마겟돈(Armageddon)’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현실화할 위기에 처했다. 바로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전면적 군사 충돌이다.

이스라엘이 자국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이 하마스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잘려진 이란과 이스라엘의 직접 충돌로 이어졌다.

지난 1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레바논·시리아 담당 지휘관과 부지휘관을 비롯해 6명의 혁명수비대 장성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이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드론 등 300기 이상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공습에 나서며 긴장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 “합법적 자위권 행사” vs 이스라엘 “이란은 나치”=언뜻 보기엔 이란이 ‘초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더 이상의 확전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이란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이 나라 본토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는 ‘새 역사’를 썼지만 ‘방어적 조치’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고, 보복 작전은 종료됐으며 이란이 공격 받지 않는 한 새로운 군사작전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호세일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란은 합법적 자위권 행사로 역내와 국제 평화 그리고 안보에 대한 책임 있는 방식을 보여줬다”면서 “현재로선 방어 작전을 계속할 의사가 없지만, 필요하다면 추가 공격으로부터 정당하게 국익을 수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 데서 이런 의도가 읽힌다.

로이터 통신은 이란 정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전 미국에 자국의 대응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알렸으며, 공습 72시간 전 역내 인접국에 통보했다 알렸다고 보도했다. ‘처벌’이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알리면서도 이스라엘군 외에 인구·경제 중심지 등 민간인은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란의 상황 통제 의지를 강조한 부분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만큼 중동 상황의 열쇠는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1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이르면 이날 이란에 대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미국과 서방 당국자들이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대응 시기와 강도를 놓고 어떤 결론을 최종적으로 내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나오는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 역시 당장은 상황을 관리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4일(현지시간) 전시내각을 구성하는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과 만나 수시간에 걸쳐 이란의 폭격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알려졌다. 회동에서는 상당수의 각료가 보복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대응의 시기와 강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의 반격을 막으려는 미국의 확전 방지 의지도 이번 사태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관심사다. 앞서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 CNN 방송도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어떤 반격도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들 매체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스라엘과 미국, 역내 다른 국가들의 공동 방어 노력 덕분에 이란의 공격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당신은 이기지 않았느냐. 승리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은 이란을 겨냥한 어떤 공세 작전에도 참여하지 않고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해했다고 말했다고 고위당국자는 전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즉각적인 군사적 반격에 나서기보단 방어에 집중한 뒤 이란의 공격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로 끌고 간 것을 두고도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려는 의중이 담겨있단 분석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나치’라 비난하고, 이란은 ‘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양측 모두 긴장 고조와 확전에 대한 가능성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란-이스라엘 군사적 긴장 고조에 전 세계 ‘호르무즈 해협’ 주목=이란·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충돌이 현실화하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이는 부문은 바로 ‘원유’ 공급망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근월물인 5월 인도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배럴당 85.5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영국 ICE 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6월 인도 브렌트유 가격은 90.20달러로 전날에 이어 90달러 대를 웃돌았다.

이번 군사적 긴장 속에서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곳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페르시아 만과 남동쪽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 만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인 이 곳. 전면적인 군사 충돌에 따른 대규모 인명 피해 등에 부담감을 느낀 이란이 전 세계를 향해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항로 봉쇄’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곳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은 글로벌 전체 흐름의 20~21%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에너지분석업체 ‘보텍사’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일 평균 원유 물동량은 2050만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 공격에 앞서 에너지 컨설팅회사 래피던 그룹의 밥 맥널리 대표는 미 CNBC방송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까지 이어진다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대로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CIBC프라이빗웰스의 레베카 바빈은 원유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콜옵션 매수 등이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가자 전쟁이 발발했던 지난해 10월엔 더 심각한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금융센터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시나리오별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단기전에 그칠 경우 배럴당 100달러 이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등 장기전 시 배럴당 100달러 상회 ▷이란의 개입으로 원유 수출이 중단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배럴당 150달러 상회란 국제 유가에 대한 가정을 제시했다.

▶高유가 → 인플레 자극 → 긴축 지속 → 투심 약화 →증시·가상자산 약세=고유가 관련주에 투자한 일부 투자자들에겐 호재일 지 모르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로 유가가 급등하는 시나리오는 현재 시점에선 결코 증시엔 긍정적이지 않은 소식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식시장과 함께 대표적인 ‘위험 자산’으로 꼽히는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 유가 급등이 최근 수개월간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다시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전월 대비 0.4% 상승하며 2월(3.2%)보다 오름폭이 커지고 전문가 예상치까지 웃돈 것은 투자 심리에 충격을 가했단 평가가 나온다.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CPI 탓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 늦게, 더 적게(later and fewer)’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 탓이다.

미국 연방기금 선물시장의 기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기준금리 전망에서 한국 시간으로 11일 오전 8시 20분 현재 연준이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5.25~5.50%로 동결할 확률은 81.3%에 달했다. 하루 전만 해도 이 확률은 42.6%였다.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할 확률도 56.1%로 하루 전 25%에서 2배 이상 올랐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최초 금리 인하 시기를 ‘일러야 9월 이후’로 제시했다. 이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초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계절적 영향으로 치부하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도 궁색한 변명이 됐다”며 “지난해 말 연준 인사들이 인플레이션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했을 당시 6개월 정도의 연율화 상승률에 기반했던 점을 감안하면, 첫 금리 인하는 일러야 9월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미 연준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는 물론 올해 초 인공지능(AI) 투자 랠리에 맞춰 미국과 일본 증시를 연이어 ‘사상 최고치’로 밀어 올렸던 종목들이 고금리에 민감한 ‘성장·기술주’였다는 점은 향후 전반적인 주가 지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국내 증시의 경우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피벗 개시 시점 지연이 현실화할 경우 그동안 급등세를 보여왔던 성장주의 ‘조정장세’는 불가피할 수 있다”고 했다.

▶중동發 원유 의존도 70% 넘는 韓, 지정학적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한국의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실제로 나설 경우 겪게 될 산업 전반의 타격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나타날 주요 상장주들의 실적 부진 탓에 금융투자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원유 수입량 중 대 중동 원유 도입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76.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85.9%에서 2021년 59.8%로 5년간 약 26.1%포인트나 낮아지며 한국의 원유 수입처 다변화 노력은 성과를 거두는 듯 했는데, 2022년 67.4%에 이어 작년 3분기엔 70% 중반대를 다시 넘어서게 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장기화 추세를 보이면서 중동 이외 산유국에 대한 원유 도입 경쟁이 심화된 탓”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적 충돌에 따른 급변 사태 발생 시 산업 전반에 미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같은 시점 기준으로 일본의 대 중동 원유 수입 의존도가 사상 최고치인 96.5%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경제 역시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에 자유로울 수 없다. 원유가 급등에 따른 생산 원가 상승은 수출 중심 기업이 시총 상위 순위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증시엔 모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의 순매수액(6억3278만달러, 약 8700억원)과 거래건수(19만6325건)를 기록했던 ‘일학개미(일본 주식 소액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행렬을 고려한다면, 일본 주식 시장에 하방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지정학적 리스크 극대화로 ‘안전 자산’ 金·銀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극대화로 인해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은 등 주요 원자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도 최근 들어 크게 높아진 모양새다.

실제로 금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근월물인 6월 금 선물 가격은 12일(현지시간) 기준 온스당 2400달러 선을 사상 최초로 돌파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금 주요 상승 요인 중 하나인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 중임에도 금 가격이 이례적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이슈와 인플레이션 우려, 각국 중앙은행과 중국 등의 리테일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중”이라고 분석했다.

금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은 2021년 기록했던 고점에 아직 미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은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상황이다.

은 가격 상승세는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N 수익률을 통해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최근 1개월 간(3월 11일~4월 11일) 수익률 최상위 6개 ETN 종목이 모두 은과 관련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오재영 연구원은 은 가격이 금의 장기적 상승 전망에 동행할 것이라 보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리스크를 고려할 때 현재 시점에선 금 투자가 더 유효한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 2008~2009년, 2020년 경기 침체 시기에도 금 가격은 ‘저점 방어’ 효과로 인해 안정적 흐름을 보였지만, 은은 경기 침체 시 다른 자산과 함께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금이 최고점을 연일 경신하는 반면, 은이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특징 때문”이라고 했다.

장기 투자라면 금에 자산을 넣고, 은은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이후 글로벌 경기 회복 국면에 진입한 지 여부를 확인한 후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조언이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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