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에 역대급 엔저, 엔화예금 잔액마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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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저점을 달성하는 등 '엔저'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꾸준히 증가하던 주요 은행 엔화예금 잔액이 이달 들어 감소세를 기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엔화예금의 경우 달러 등과 비교해 투자처가 다양하지 않고, 수익성이 적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은 아니다"며 "엔저 현상이 지속되며 실수요는 증가할 수 있지만, 투자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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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금리인하 지연전망에 수요 하락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저점을 달성하는 등 ‘엔저’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꾸준히 증가하던 주요 은행 엔화예금 잔액이 이달 들어 감소세를 기록했다. 엔화 가치 반등 수요가 몰렸던 최근 추이와 반대 양상이 나타난 셈이다. 이는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등 엔화 가치 반등 신호가 이어졌음에도, ‘킹달러’와 같은 대외적 요인에 따라 엔화 가치가 좀처럼 오르지 않은 영향이다.
▶1년 새 ‘두 배’ 늘었던 엔화예금, 이달 들어 감소세=1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1일 기준 엔화예금 잔액은 1조1984억엔으로 약 보름 전인 3월 말(1조2129억원)과 비교해 176억엔(1.44%)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이후 약 4개월 만에 나타난 감소세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6222억엔에 불과했던 5대 은행 엔화예금 잔액은 줄곧 상승세를 지속하며 약 1년 만에 1조엔 규모를 돌파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잔액은 1조2129억엔으로 1년 새 두 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0엔당 1000원을 넘나들던 원·엔 환율이 지난해 5월을 기점으로 900원대로 떨어지며 ‘역대급 엔저’ 현상이 나타난 영향이다.
엔화예금 수요는 대부분 환차익을 노린 투자 목적이다.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해 온 특성상, 예금을 통한 수익도 0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이 대두되며 투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실제 정책 변화가 이뤄졌음에도,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19일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BOJ)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정책금리를 기존 마이너스(-) 0.1%에서 0.1%포인트 올려 0~0.1%로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약 8년 만에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 다음날인 20일 달러·엔 환율은 장중 달러당 151.82엔까지 오르며 약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원·엔 환율도 3월 21일 종가 기준 875.85원을 기록해 전날(884.15원)보다 8.3원 내렸다. 이같은 현상은 이달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153엔을 돌파해 1990년 6월 이후 약 3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수십 년 만에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미뤄지는 美 금리 인하...속 타는 엔테크족=사정이 이렇다 보니 엔화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이달 들어 엔화예금 잔액이 줄어든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발생한 가장 큰 이벤트라고 볼 수 있었던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가 환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투자심리가 다소 꺾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신호가 확실시되기 전까지, 엔화 가치가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강달러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유로화·엔화 등 6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6.09까지 올라, 지난해 11월 3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공개한 미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예상치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물가 수준이 높다는 것은, 긴축 정책의 필요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미국이 오는 6월을 시작으로 금리 인하에 돌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저물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 시기가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 경우 ‘엔테크족’의 수익 실현 시기 또한 미뤄질 수 있다. 향후 엔화 투자 수요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 관계자는 “엔화예금의 경우 달러 등과 비교해 투자처가 다양하지 않고, 수익성이 적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은 아니다”며 “엔저 현상이 지속되며 실수요는 증가할 수 있지만, 투자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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