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부터의 독립 [김홍유의 산업의 窓]
몇 년 전에 의미 있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이다. 로버트 J 고든이 지은 책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다.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상들이 스텝(steppe) 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후 농사가 본업이 되어 말보다는 소를 더 소중하게 여겼지만, 인간의 혁신 사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말(馬)이다. 말은 원래 고기와 젖을 얻기 위해 기르기 시작했지만, 초원 지역에서 전차가 발명된 이후 전쟁에 참여하였다. 원래 야생말은 인간을 태울 수 없을 만큼 크기가 작았으나 점점 개량하여 사람을 태울 수 있을 만큼 덩치가 커졌을 때 기마병이 탄생하였다. 전쟁에서 기마병은 기동성과 적의 방어망을 돌파하는 무기, 군참을 실어나르는 용도로 사용한다. 말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전쟁에서 몽골 기마병의 사례를 빼면 전쟁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말발굽이 닿는 어느 곳이든지 그들의 영토가 되었으니 말이다.
말은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사이 오늘날의 전쟁이 한창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최초로 가축화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스텝 지역에서 전차가 발명되었다. 전차를 이용한 민족이 지역 패권을 차지한 것은 당연했다. 기원전 900년경에 동남 유럽 전역에서 기마병이 등장했고 기원전 300년경 중국에 도달했다. 서기 500년경 등자가 발명되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말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교통정체와 높은 보험료, 지나치게 많은 교통사고 사망자 등 때로는 농부들의 식탁에 올라야 할 곡물들이 연료로 전환되어 식량의 가격을 올리고 식량 부족을 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공기 오염물질과 유독성 배출물들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고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많은 사람은 오늘날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교통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1870년대의 뉴욕의 교통 문제 글이다. 자동차가 아니라 ‘말’의 이야기다. 그 당시 뉴욕에는 약 20만 마리의 말들이 있었는데, 인구 17명당 한 마리꼴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선이 돛단배를 대신하고, 철도가 마차를 대신하여 전국을 이어 주어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말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왜냐하면 철도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어 주었지만, 도시 내에서 혹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여전히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말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싸는 똥이었다. 말은 하루에 평균 11kg 정도의 똥을 싼다. 말이 20만 마리라면 그 총량은 거의 2300톤에 달한다. 그 당시의 물류로 말똥을 처리할 수 없어 결국 공터에 쌓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높이가 약 20m 가까운 것도 있었다. 그런 똥들이 길거리 가장자리에 즐비했으며, 여름이면 악취가 코를 찔렀다. 비라도 오면 걸쭉한 똥물이 인도로 넘쳐흐르고 주택의 지하실로 스며들었다. 죽은 말의 사체에서 내뿜는 지독한 악취, 산더미처럼 쌓인 똥, 식수를 오염시키는 똥물 등 도시는 그야말로 매일매일 말과 전쟁으로 시작하여 말과의 전쟁으로 끝났다. 말은 동물인지라 매일 먹어야 하고 매일 싸야 하며 매일 쉬어야 한다. 이 모든 난제를 깔끔히 해결한 것이 ‘자동차’였다. 자동차가 등장하고 나서야 말의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인간은 말을 초원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우글우글거리는 도시의 또 다른 문제는 실내 등(燈)이었다. 등불이 화재의 원인이 된 것은 당연하였지만, 엉뚱하게도 바다의 고래를 멸종시켰다. 등유의 기름을 고래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 역시 에디슨의 전구 발명으로 해결되었다. 전구가 발명되고 나서야 고래를 다시 바다로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가 극한으로 치달아야 혁신적인 생각을 하고 그 문제를 또 다른 ‘기술’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말 등에 올라타고 나서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었고, 말 등에서 내려와 진정한 이동성과 자율성을 얻었듯이 호모사피엔스는 기계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다.
우리는 지금 실업 문제와 소득 불균형, 에너지 문제 등 많은 난제들이 놓여 있다. 말을 초원으로 돌려보내고,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듯이 인간을 인간이 태어난 곳 사바나 지역으로 되돌려 보낼 미래의 기계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혁신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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