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바람 많은 제주 채우는 해상풍력발전 현장 | 제주 2만4000가구용 전력 생산… 과부하로 인한 출력 제어 ‘숙제’
‘삼다도(三多島)’ 제주도는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성이 많은 섬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 많은 세 가지 중 ‘바람’은 신재생에너지인 풍력에너지를 생산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3월 28일 오후 1시, 제주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을 달리자 10기의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제주 한경면 바닷가로부터 1㎞ 정도 떨어진 해역에 조성된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다.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에선 풍력발전기 6기가 비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나머지 4기는 이날 낙뢰를 맞아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국남동발전(남동발전) 관계자는 설명했다.
"바다 설치 풍력발전기, 소음 문제 일으키지 않아"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지만, 산간 지역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내는 특유의 ‘윙’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바다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충분히 이격돼 있어 특별히 소음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 자연 바람과 파도 소리에 묻혀 들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첫 상업용 해상풍력단지다. 설계부터 제작, 설치까지 모든 공정을 국산 기술로 지었다. 현재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에는 3㎿(메가와트) 용량의 풍력발전기 10기가 설치돼 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바람을 맞으며, 제주 지역 2만4000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 2017년 9월 준공 이후 생산한 전력량은 50만㎿h(메가와트시)에 달한다.
전력을 전달할 수 있는 전력 계통이 설치돼 있어 한국전력에 생산한 전기를 판매한다.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는 사업 추진 당시 목표했던 가동률(95%)과 이용률(28.9%)을 상회하는 가동률 98%, 이용률 28.9% 정도로 운영 중이다.
풍력은 태양광과 달리 해가 없는 밤에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나 눈이 와도 정상 가동된다. 특히 해상풍력은 파도 소리로 인해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묻혀 소음 등 민원 요소가 적다. 육상에 있는 풍력발전 사업보다 주민 수용성이 크다고 한다.사업 추진 과정에서 어민들이 제기한 ‘수산자원 황폐화’ 관련 반발도 잠잠해졌다고 한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발전기 구조물에 따개비와 이끼 등이 달라붙어 일종의 먹이 역할을 해 오히려 주변에 물고기가 많이 몰린다”면서 “일각에선 발전기 소음이 돌고래 등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최근에도 돌고래가 주변 해역에서 자주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석춘 제주 한경면 금등리 이장은 “사업 추진 초기 해녀들이 어획량이 감소할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실제론 어획량이 감소하지 않아 이제는 관련 민원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다수의 주민은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를 확장하자고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남동발전의 지역 지원사업 덕분이다. 피해 조사 용역 감정평가에 따라 단지에서 가까운 두모리와 금등리에 어업 피해 보상금을 전달했다. 여기에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해 풍력발전기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금등리 제주어 마을과 두모리 관광 숙박시설 조성 등을 지원해 관광객이 찾도록 유인했다.
해상풍력은 초기 설치 비용이 지상풍력 발전기보다 더 든다. 그래서 민간투자의 필요성이 절실했는데, 순수 민간 자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남동 신재생펀드’를 유치해 1650억원의 재원을 조달했다. 이곳의 최대 지분율(63%)을 보유한 남동발전은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의 확장 사업과 ‘삼면이 바다’라는 특징을 가진 우리나라의 동해, 서해, 남해에서 해상풍력발전을 할 수 있는 모델을 준비 중이다.
우선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에는 2046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해 8㎿ 발전기 9기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신안(690㎿)·완도(600㎿)를 비롯해 인천(640㎿)·여수(900㎿)· 통영(400㎿)에도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을 구상 중이다. 수심이 깊은 동해에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시설을 구축할 예정이다.
과잉 전력 생산에 따른 잦은 풀력 제어 해결해야
다만 과잉 전력 생산에 따른 잦은 출력 제어는 풍력발전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업계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출력 제어란 전기 수요보다 공급이 초과하는 시점에 발전설비가 만든 전력을 계통에서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전력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져도 문제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아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야기할 수 있다.
남동발전에 따르면 지난해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만 90회의 출력 제어가 발생했다. 4일에 한 번은 출력 제어를 한 셈이다. 출력 제어로 인한 손실 비용은 9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성호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본부장은 “사업자 입장에선 제주에서 시범사업으로 도입되는 소규모 전력 중개 계약을 잘하고, 예측 단가를 높여서 수익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국가 차원에서 송전망 공급 등 제도·정책을 보완하고, 출력 제어 권한을 지자체로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 최대 육상풍력단지인 ‘어음풍력발전단지’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어음풍력발전단지는 지난해 11월 첫 상업 운전을 한 이후 최근까지 4개월 동안 13번 출력 제어를 했다. 특히 전력 수요가 감소하는 봄철이 되면서 출력 제어가 빈번해지고 있다. 한인수 어음풍력발전단지 차장은 “최근에만 8~9번 출력 제어를 했다. 앞으로 더 많이 출력 제어를 하게 될 텐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이효우 남동발전 풍력운영부장은 “잉여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 필요할 때 쓰도록 하고, 제주와 내륙 간 전력 전송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제3 연계선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제주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장 가까운 전남으로 보내는 것이 좋은데, 전남 역시 제주처럼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많아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력 업계 관계자는 “제주에서 생산한 전력을 원거리인 육상에 효율적으로 송전하려면 고전압 전력을 운반할 계통 시설이 필요하다”면서 “송전 시설 설치와 출력 제어를 막기 위한 전력 공급 문제가 지역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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