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74> 조엘 스턴펠드(Joel Sternfeld)의 '하이 라인을 걷다(Walking the High Line)'] 무분별한 개발 속 도시 공간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질문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2024. 4. 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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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스턴펠드(Joel Sternfeld)의 ‘하이 라인을 걷다(Walking the High Line)’ 표지. 사진 김진영

도시 공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개발 논리일 것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보다 최첨단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의 편리를 도모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이 현재와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곧잘 목격한다.

그럼에도 과거의 유산을 간직하면서 현대적으로 재생산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하이 라인 공원이다. 버려진 고가 철도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수많은 방문객으로 끊이지 않는 이 공원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을까.

고가 철도가 없던 시절, 지상 선로를 오가는 화물 열차는 수많은 물품과 식량을 운송하기 위해 필수적이었지만, 많은 교통사고와 혼잡을 발생시켰다. 1910년대에는 540명이 기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고 이로 인해 10번가는 ‘죽음의 거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지상 선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가 철도를 만들려는 계획이 수립됐다.

1930년대에 맨해튼 서쪽을 중심으로 운행이 시작된 하이 라인은 수백만t의 육류, 유제품, 농산물을 운송했다. 효율적인 물류 운송과 더불어 거리를 오가는 보행자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이 라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트럭을 통한 도로 운송의 증가로 인해 하이 라인의 화물 운송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열차 이용이 감소하게 된 것이다. 1960년대부터 일부 구간의 철거가 시작됐고 1980년대에는 모든 하이 라인의 교통이 중단됐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그렇게 방치된 고가 철도는 어떻게 됐을까. 사람이 내어준 자리를 자연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 운영된 기차 바퀴는 전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야생화 씨앗을 가져왔고 이러한 꽃과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여 하이브리드 풍경을 만들어냈다. 계절별로 색다른 풍경을 도시 한가운데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선로를 철거하여 부동산 개발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고, 당시 뉴욕 시장 루디 줄리아니는 선로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하이 라인이 무성한 야생 식물 정원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고, 그저 보기 흉한 곳이라 생각했다. 숨겨진 풍경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1999년 비영리 단체 프렌즈 오브 더 하이 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이 설립됐고, 하이 라인의 보존과 재사용을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하이 라인을 걷다(Walking the High Line)’는 철거 위험에 놓인 하이 라인에 숨겨진 다채로운 풍경을 포착한 스턴펠드의 사진이 담긴 책이다. 오늘날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되기 이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프렌즈 오브 더 하이 라인 멤버였던 스턴펠드는 하이 라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하이 라인에 숨겨진 풍경의 아름다움을 여러 계절에 걸쳐 포착했다. 뉴욕의 수직적 건축에 둘러싸인 가운데 무성한 풀과 들꽃이 자라는 독특한 폐허인 이곳에서 그는 자연과 도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봄에 피어나는 꽃, 푸르른 여름, 갈색 빛깔로 물드는 가을, 겨울의 눈까지, 철거 위험에 놓인 하이 라인은 스턴펠드의 렌즈를 통해 기록될 수 있었다.

벽에 그려진 낙서나 오래된 광고판 등 간혹 사람의 흔적도 함께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크리스마스트리다. 하이 라인에 인접한 건물에 살고 있던 켄 로브슨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침실과 하이 라인 구조물 사이에 나무판자를 놓았고 이를 통해 그는 하이 라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긴 전선을 연결해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트리를 철로 위에 놓아두었다. 스턴펠드는 2001년 1월 홀로 빛나는 트리를 사진에 담았다.

이 책은 2000~2001년 철거 위험에 놓였던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가 철도 ‘하이 라인’에 숨겨진 다채로운 풍경을 포착했다. 현재와 같이 공원으로 조성되기 이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스턴펠드는 하이 라인에 숨겨진 풍경의 아름다움을 여러 계절에 걸쳐 이 책에 담았다. 사진 김진영

스턴펠드의 사진은 프렌즈 오브 더 하이 라인이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됐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하이 라인의 풍경이 담긴 사진은 이곳을 철거하지 말고 공원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하이 라인의 미래가 불확실하던 시기, 공원으로 다듬어지기 전 날것의 상태가 담긴 이 사진들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하이 라인의 역사를 사진과 텍스트와 함께 19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이 책은 좁은 의미에서의 작품집을 넘어, 도시 공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 도시 재생과 공간의 변화와 연결된 복잡한 문제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만들며, 도시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을 모색하게 한다.

개발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역사적 유물조차 기꺼이 지우려는 다양한 부동산 계략 가운데서 하이 라인은 살아남았다. 자연의 회복력 그리고 그것을 소중하게 바라본 사람들의 감수성은 잊히고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상상하고 변화시켜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자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보존과 개발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하이 라인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통해 보다 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도시를 재생하고,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사는 도시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책은 하이 라인을 통해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여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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