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부활 위해 박병무 소환한 ‘택진이형’의 노림수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2024. 4. 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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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이래 처음 CEO 포지션 공유하며 공동대표 체제로 ‘김-박 연합전선’ 구축
시너지 창출 목표지만 관점 충돌 가능성도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엔씨소프트와 창업주인 김택진 대표는 게임의 대명사와 같다. 게임 업계 1위 기업은 아니지만 게임산업에서 엔씨소프트의 존재감에 비견되는 기업은 없다. 대표역시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이후 27년째 국내 게임 및 IT 업계에서 가장 신화적인 인물, 가장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인물로 손꼽혀왔다. 다수의 게임 기업이 CEO를 자주 교체했지만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창업주가 변함없이 단독 CEO를 맡아왔다. 그가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얘기다.

그런데 지난해 12월11일, 엔씨소프트가 김택진과 박병무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엔씨소프트에서 CEO 자리는 김택진 창업주의 몫이었다. 27년 넘게 그 어떤 전문경영인에게도 CEO를 맡기지 않았던 김택진 대표가 대표이사(CEO) 포지션을 박병무 변호사와 공유한 것이다. 오너가 오너급 인물과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3월28일 경기 성남시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진행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병무 공동대표의 사내이사 신규 선임 안건이 통과됐다. 해외출장으로 인해 김택진 대표의 정기 주총 불참이 이미 알려져 논란이 일자 이를 정면돌파하듯이 박병무 신임 대표는 2022년 대비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과 성과가 부족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재도약을 약속했다. 박병무 대표의 존재감이 드러난 부분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왼쪽)와 박병무 엔씨소프트 신임 공동대표 ⓒ연합뉴스

엔씨의 위기가 불러낸 박병무 공동대표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1인 대표체제다. 그의 아내 윤송이 사장이 전략을 총괄하고 동생이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지만 김택진 대표는 CEO라는 자리를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공동대표에 대한 의구심이 일자 김택진 대표는 지난3월20일 박병무 공동대표 내정자와 유튜브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진행해 자신은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신임 대표인 박병무 대표가 인수합병(M&A)과 경영 효율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씨소프트가 창사 이래 최초로 공동대표 출범을 알린 이유는 저조한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고공행진했던 실적은 엔데믹과 함께 스톱됐다. 2020년 매출 2조4162억원, 영업이익 8248억원을 기록하며 최대 실적을 창출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매출 1조7798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으로 추락했다. 3년 만에 매출액은 26% 빠졌고 영업이익은 83% 넘게 주저앉았다. 103만원을 찍던 주가는 20만원 아래서 맴돌고 있다.

저조한 성과와 함께 시장의 평가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젊은이들에게 '택진이형'으로 불리며 호감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김택진 대표는 연이어 내놓은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 앤 소울2'가 실패하고 NC 다이노스 구단이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비난의 상징이 됐다. 엔씨소프트의 주가 폭락으로 주주들의 분노가 높은 상황에서 김택진 대표는 지난해에도 총 72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아 게임 업계 최고 연봉 타이틀을 유지했다.

박병무 공동대표의 역할은 명확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수합병을 통해 조직의 효과성도 함께 키워야 한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시장에서 리니지라이크(리니지류의 게임)로 불리고 있다. 수익성에 치중한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20년 가까이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엔씨소프트는 M&A를 검토해 추구할 것이란 점을 숨기지 않았다. 게임 개발에서 M&A로의 전환이다.

박병무 대표는 1980년대는 수험생들에게, 1990년대는 로펌 업계에서, 2000년대는 콘텐츠 분야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과 수석졸업은 그의 천재성을 말해 준다. 1990년대 제일은행, 한일은행, 쌍용증권 등 금융계 M&A로 성과를 쌓았고 2000년대 중반에는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와 하나로텔레콤의 CEO를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KBS 사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거물이다. 그가 공동대표에 선임된 후 엔씨소프트의 전략을 총괄하던 윤송이 사장과 게임퍼블리싱을 맡아온 김택헌 수석부사장이 각각 최고전략책임자(CSO)와 최고퍼블리싱책임자(CPO)에서 물러났다. 김택진 대표의 최측근일 수밖에 없는 윤송이 CSO와 김택헌 CPO의 2선 후퇴는 박병무 대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박병무 대표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 추구와 M&A를 위해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강조했다.

김택진과 박병무의 시너지 창출 여부 주목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저조한 실적도 문제지만 침체된 기업 이미지도 살려야 하고 게임 개발에서 잠재력을 입증하지 못해 하락한 주가도 소생시켜야 한다. 북미 회사 엔씨웨스트는 6년간 적자를 기록했고 조직 차원에서 추구한 팬 플랫폼 유니버스 역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리됐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까지 엔씨소프트의 게임개발자들이 보여준 역동성 넘치는 수평적 문화는 수직적인 문화로 바뀐 지 오래다.

문제는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한 김택진 대표와 박병무 대표의 시너지 창출 여부에 있다. 한 명은 오너로서 27년간 단독경영 체제로 의사결정을 진행해 왔고, 또 한 명은 오너 못지않은 거물로 수많은 의사결정을 독자적으로 추구해 왔다. 게임 개발과 경영관리로 책임소재 영역을 나눴지만 조직의 의사결정, 기업전략 등 경영의 모든 면에서 영역은 늘 중첩된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대한 두 대표의 관점 충돌도 예상된다.

김택진 대표는 게임 개발을 통해 가능성을 추구해온 CEO다. CEO 이전에 최고창의력책임자(CCO)를 강조할 정도로 그는 창의성을 중시한다. 다양한 실험을 추구하고 시행착오를 용인해야 한다. 반면, 박병무 대표는 평생 법조인으로 살며 M&A와 구조조정을 추구한 인물이다. 당연히 효율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두 대표의 전공인 전자공학과 법학의 세상 보는 관점이 다르듯이 두 인물이 걸어온 길도 다르다.

박병무 대표는 2007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로 일했기에 시너지 창출에 문제가 없다고 얘기한다. 김택진과 박병무 대표는 대일고 선후배 관계로 오랜 기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형님-동생 관계가 의사결정에서도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엔씨소프트에도 두 개의 태양은 지금껏 없었다. 두 대표는 지금껏 태양으로만 인생을 살았다. 공동대표 체제는 그래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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