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찔움찔 씰룩씰룩…춤꾼의 몸짓이 몸 떨리는 전시장에 들어왔다

노형석 기자 2024. 4. 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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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이양희 개인전 ‘축과 발’ 현장
춤꾼 이양희의 개인전 전시장의 일부분. 왼쪽 방에는 한자리에 축을 잡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무를 보여주는 작가의 율동이 오른쪽 방에는 춤출 때 움찔거리는 작가의 발 근육 움직임을 확대해 보여주는 동영상이 흘러간다. 더페이지 갤러리 제공

등짝이 실룩거린다. 발등은 움찔거린다.

몸 떨리는 미세한 영상들이 눈길을 잡아매는 전시판이다. 춤꾼이자 안무가인 이양희(48)씨가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 벌인 개인전 ‘축과 발’의 현장은 치열한 율동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안쪽 전시 공간에서는 춤사위에 젖어 움찔거리는 사람의 뒤태와 아래 몸 세부를 낯설게 키워 보여주는 영상들이 작가가 혼자서 추는 여러 독무들의 영상들과 나란히 돌아간다. 튀르키예 이슬람 수피교단의 영성 춤 세마를 연상케하는, 빙글빙글 도는 원무가 펼쳐지는가 하면, 이땅의 전통 부채춤이나 칼춤 등을 떠올리게 하는 자연스럽고 은근한 손과 어깻죽지의 춤사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몸을 흔드는 모습도 이어진다. 이런 춤판들의 미세한 부분이 바로 클로즈업된 작가의 등과 발등 근육의 꿈틀거리는 모습들인데 각 이미지들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뽀득거리는 춤꾼 발의 바닥 마찰음과 이어폰 끼면 들리는 125~130비피엠(BPM) 비트가 되풀이되는 율동 음악이 얽혀든다. 전시실마다 이런 얼개로 관객 눈앞에 나타나는 춤 영상들은 반복되는 몸틀임의 매혹을 내뿜는다.

작가는 전통춤을 배웠지만, 미국 뉴욕대에 유학해 현대 무용의 안무를 익혔다. 이후 전통 춤사위와 현대 시각언어와의 접점을 모색하는 전방위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미디어아트는 물론 퍼포먼스 난장까지 섭렵한 작가는 춤의 주된 요소인 몸과 쾌락, 형상(form)을 영상 퍼포먼스로 풀어내며 춤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지난 수년 사이 ‘어피셔나도’ ‘트윅스트’ ‘트위그’ ‘게잠트쿤스트벨크’ ‘더스크’ 등 숱한 안무작품들이 그 결실로 나왔는데, 대부분 백남준아트센터, 선재아트센터 등의 미술기관에서 퍼포먼스 영상으로 재구성되어 관객과 만난 점이 특이하다.

이 전시 또한 영상 언어를 표현통로 삼아 자신이 개발한 12개 연습 무용들의 주요 장면을 풀어나간다. 제목인 ‘축과 발’도 이 연습무용들 가운데 일부 명칭. 몸의 중심이 ‘맺고, 풀고, 잡고, 어르면서’, ‘긴장하고, 뻗어 나가고, 지탱하고, 지속하면서’ 세상과 호흡하는 전통 춤의 기본 원리를 탐구하는 자리라고 한다. 지난달 15일 전시 개막날 만난 작가는 전시를 설명하면서 “공연예술로는 춤에 대한 물음을 완전히 풀 수 없어 시각예술에 다가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무대 공연을 숱하게 하면서 내 춤의 시작은 무엇이고 어떻게 몸이 움직이는 건지 등에 대해 계속 묻게 되더라고요. 그 질문을 공연예술로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공연하는 춤은 시간 제약으로 질문 자체가 무대에서 금방 날아가 버려요. 분위기나 에너지, 동작 등을 한번에 보여주고 끝나니까요. 그런데 춤판을 재구성한 영상작업을 하면 동작 자체를 부각해 나 자신과 관객에게 계속 강조할 수 있지요. 그 안에서 뭔가 새로운 춤의 단면 같은 것들이 발견되죠. 거듭해 볼 수 있으니까요.”

각 전시실 영상들은 춤판의 스펙터클한 광경 자체보다 놀리는 몸에 깃든 움직임 원리에 시선을 쏟는다. 작가는 한국춤 기본에 대해 발을 정확하고 튼튼하게 지탱하면서 몸의 축을 곧게 세운 것을 유려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이런 기본 구도를 놓고 내 몸을 공간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제자리에서 돌고 도는 몸, 위를 향해 치솟거나 아래로 꺼지는 몸, 떨림을 의식하는 몸 같은 여러 출품 영상에서 한결같은 중심은 ‘축과 발’이다. 입말로 전승되어 몸으로 육화한 전통 춤사위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아트로 새 춤 동작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의 ‘촉’ 또한 ‘축’을 바탕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을 영상으로 느끼게 된다.

작가의 홀로 춤판을 담은 이 전시와 다르게 경기도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의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전에는 여러 젊은이들과 온라인상에서 떼춤 몸짓을 공유하는 동영상 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오는 18일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개막식 현장에서 기념 퍼포먼스도 실연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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