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양식장인줄 알았는데…전세계 최고령 '오션테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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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산역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통영 연명항.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깃발이 달린 연구선박을 타고 10~20분 정도 나가자 가로·세로 각각 5000㎡ 정도의 크기에, 수심 30m의 양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정박한 곳은 KIOST 통영메가코즘시험기지(이하 통영기지). 기지 앞 양식장 중앙 보행교 위에 다다르자 검정색 그물망 사이로 수많은 치어떼가 물거품을 튀기며 뛰어올랐다. 이곳 담당자인 정윤환 통영기지장은 " 2년 전부터 종보존 필요성이 생겨 키우고 있다"며 "여기 구조물을 그물망으로 전부 씌워 둔 이유는 해달이 자주 와서 치어를 잡아먹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선박 3척, 생물관리용 사료 제조기, 해양기상 관측장비, 다수의 수중카메라가 설치된 통영기지는 1984년부터 본격 운영됐다. 한때 '바다목장' 사업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육상에서 소떼를 풀밭에 풀어놓고 키우는 목장과 같이 바다에 인공어초 등을 투입해 물고기들의 서식지를 만들어 주고 건강한 종묘를 방류해 성어로 다 자라면 방류하는 사업을 1998년부터 해왔다.
과거엔 과도한 어획으로 수산자원이 감소해 연안 어장 수산자원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운영됐다면, 지금은 기후변화가 어획량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양식법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정 기지장은 "해양 온난화 가속화로 여기 바다도 평소 24~26도에서 작년 한여름 30도까지 치솟았다"며 "지난 40년 간 연근해 어업생산량이 30% 이상 줄다 보니 어민들이 목숨 걸고 멀리 더 멀리 나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생태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통영기지는 '해양 수층 공간을 활용한 양식법'을 개발했다. 이는 간단히 말해 표수층(0~5m) 온도가 올라가면 수온이 17~19도 정도인 중저층(10~30m) 구간으로 양식설비를 내렸다가 표수층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올리는 방식이다.
이곳이 단순한 양식장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기지 측면에 설치된 그물망 위로 조류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다. 특정 위치에서 역방향 혹은 회전하듯 이동하는 조류, 그 아래엔 원자력발전소 취수구로 유입되는 해양생물을 차단하는 '해양생물 유입방지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다. 정 기지장은 "15년 전 원자력발전소 취수구로 해파리떼가 대량 유입돼 가동이 정지된 적 있는데 당시 손해액이 몇 천억원 정도 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박용주 KIOST 전문연구위원에 따르면 해양생물 유입방지 그물망을 쓰면 해수에 포함돼 있는 해파리, 멸치, 새우 또는 해조류 등의 해양생물과 기타 이물질을 제거해 정상적인 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그물망은 2019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울진, 월성, 고리 등에 설치, 운영 중이다.
통영기지에서 시작해 통영해양생물자원보전장(2008년), 통영해상과학기지(2015년), 통영메가코즘시험기지(2023년)로 40여 년 간 수차례 명칭이 바뀔 때마다 이곳 기능과 역할도 바뀌었다. 그 사이 '전 세계 가장 오래된 해양연구기지'라는 기록도 세웠다. 오랜 역사만큼 배출한 R&D(연구·개발) 성과가 적잖다.
2011년부터 기상 악화에 따른 일조량 감소로 서해안 천일염 생산이 줄면서 소금값이 급등하자 통영기지 연구진은 해수담수화 시설에서 버려지는 고농축해수를 비닐하우스에 가둔 뒤 일정한 온도를 가해 증발시키는 기법으로 품질 높은 소금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보통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평균 기간은 25일인데 반해 이 기술은 하루 반나절이면 미네랄 함량이 풍부한 다량의 소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입수→미세버블 혼합(1차 여과살균)→2차 규조토 단면막 여과→3차 전기·자기장 살균 및 중금속 제거' 등의 과정을 거쳐 바닷물을 사람이 직접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만드는 기술도 개발, 중소형 선박에 적용 중이다.
기지에서 800m 남짓한 곳엔 우주선 모양의 부표가 눈에 띄었다. 이는 KIOST가 연구소기업 로고스웨어와 함께 개발한 '하이브리드 부유식 발전시스템'이다. 부표 내부엔 파도에 의해 작동되는 파력발전기, 외부에는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 모듈이 설치돼 밤낮으로 발전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정 기지장은 "30㎝ 이상 파도만 있으면 발전이 가능해 파도 높이에 따른 제약, 설치 장소의 제한이 없다"며 "부표당 일일 22kWh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약 3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으로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섬지역 마을을 대상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영기지는 최근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들과 탄소제로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실증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 기지장은 "민간 기업뿐 아니라 국립수산과학원과 '양식장 그물 부착생물 분포특성 조사' 등을 진행하는 등 외부 기관·기업들에게 유휴 공간을 제공해 다양한 해양 기술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주요 어종 보존과 양식업 생산성 증대로 시작된 통영기지가 앞으로는 국가해양과학기술 개발·실증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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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경남)=류준영 기자 j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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