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5세기부터 얽힌 이스라엘-이란, 예측불허 ‘그림자전쟁’ 결말은?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이란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수백기를 발사해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이란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하고 이스라엘도 재보복 가능성을 암시해, 가자 전쟁의 중동 다른 지역 확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14일(현지시각) “(이란이 발사한) 300여기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 중 99%를 요격했다”며 이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란이 13일(현지시각) 밤 무인기를 발진한 것을 최초로 확인한 미국은 즉시 이 사실을 이스라엘에 통보했다고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은 보도했다.
이란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 7명이 숨지게 한 데 대한 “자위권” 차원으로 이번 공격을 했다고 밝히며, 공격이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4월14일)
Q. 헐.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다니 이란도 강심장이네. 정말 큰 일이야. 5차 중동전쟁 얘기가 나오더라.
A. 중동, 하면 늘 분쟁지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그런데 실제로 ‘국가 대 국가’로 공개적 교전 행위가 벌어진 것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처음이야. 대체로 중동에선 이스라엘-하마스 간 가자전쟁처럼 국가 대 무장단체, 무장세력과 무장세력 사이, 또는 내전 같은 양상이 벌어졌어.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2대 군사 강국이야. 이런 나라들이 상대방 영토를 공개적으로 직접 공격한 행위는 이라크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사태라고 할 수 있어.
Q. 중동에서 가장 힘이 센 톱2끼리 붙은 거니 더욱 걱정이다. 진짜 확전으로 이어지는 거야?
A. 형식적으로는 심각한 사태인 건 맞아. 하지만 속을 좀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야. 일단,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 교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둘째, 이란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가 경미해.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표적으로 삼은 것은 주로 이스라엘의 군사시설들이야. 이란의 속내는 확전을 피하려는 거라고 미국에선 분석한대. 더욱이 드론과 미사일은 대부분 국경을 넘어오기 전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 돔’을 비롯해 미국 중부사령부(중동·이집트·중앙아시아)의 대응으로 요격됐어. 이스라엘은 요격률이 99%라고 해. 이란이 공격해도 어차피 성능이 뛰어난 아이언 돔이 막아줄 거라는 예상은 이미 나왔어.
이란의 보복 공격이 상징적 차원이라고 풀이하는 근거지. 이란으로선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자국 영사관을 폭격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겠어?
이란은 또 공격이 있고 나서 ‘보복이 종료됐다’고 서둘러 밝혔어.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에서 내놓은 입장을 잘 살펴봐. “이 문제는 결론이 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권이 또 한번 실수를 한다면, 이란의 대응은 상당히 더 심각할 것이다.” 어때? 일단 이걸로 우리 ‘쌤쌤’으로 하자, 이렇게 읽히지 않아?
문제는 이스라엘이야. 이란은 이 정도에서 끝내고 싶어하는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가만있을까, 그게 핵심이지.
Q. 그런데 가자전쟁만 봐도, 이스라엘은 자기가 당한 그 몇백배로 보복하잖아.
A. 일단 말만 보면 이스라엘은 분기탱천했어. 네타냐후는 이란 공격 당일인 14일 전쟁 내각 회의에서 “전례 없는 대응 계획”을 승인했다고 해. 이스라엘 현지 언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의미 있고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어. 이스라엘은 지금 판이 커지기를 바라는 측면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엄청난 가자 전쟁으로 국제적 왕따가 되고 있잖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계속 휴전을 압박하고 있고. 그런데 이란의 공격을 받으니, 가자전쟁에 대한 시선을 돌릴 수 있잖아. 당장 미국도 이스라엘을 도울 수밖에 없고.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가자전쟁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야. 미국은 지난달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기권이라는 형식으로 가자전쟁 휴전결의안 통과를 허용했어. 미국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불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번번이 부결시켜줬는데 이번엔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야.
Q. 바이든은 이란의 공격 당일 네타냐후와 통화하면서 이스라엘의 반격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경고했다고 하던데.
A. 미국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주시리아 이란영사관을 공격한 데 대해 이미 열 받아 있는 상황이었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3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에게 직접 불만을 전달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1일 보도했지.
미국은 무참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는 이스라엘만 일방적으로 지원한다고 국제사회 비난을 받고 있고, 국내에선 민주당 쪽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압력도 높아지고 있어. 대선을 앞에 둔 바이든은 사실상 사면초가 상태야. 바이든으로선 자꾸 판을 키우는 네타냐후가 미워죽겠지만 유대계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
Q. 그럼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서지 않을 거 같아?
A. 이스라엘이 미국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까지 당장 보복하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미꾸라지 같은 이스라엘이 이번 사태를 그냥 넘길지는 두고 봐야 해. 아마도 자기들이 필요할 때 이번 사태를 끄집어내서 활용하겠지. 이란과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때엔 ‘액션’이 있겠지.
Q. 그런데 이란과 이스라엘은 왜 이렇게 철천지원수가 된 거야?
A. 이란과 이스라엘은 수천 년 오래된 관계야.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빌론 유수’ 들어봤어? 수메르·아카드인들로 구성된 바빌로니아 제국이 기원 전 6세기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곤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어. 이후 기원전 5세기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대제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려보냈어. 그래서 지금도 이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배은망덕하다”는 농담을 하지.
비교적 사이가 좋던 이란-이스라엘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관계가 악화했어. 이슬람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을 서방 식민주의의 대리인으로 규정했어.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했던 걸 취소하고 단교했지. 그래도 1980년대엔 직접적 적대행위가 없었어. 당시 이스라엘 최대 주적은 이라크였거든.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이스라엘은 이란에 무기를 간접 지원했어.
양국 간 적대관계는 팔레스타인 문제로 싹트기 시작했어.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공개적으로 적극 지지했어. 현재 서안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기원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방문한 첫 국외 지도자였지.
이스라엘은 당시 레바논에 있던 해방기구 세력을 뿌리 뽑으려고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어. 이스라엘의 침공은 레바논 남부 시아파 무슬림들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지. 이란은 이스라엘 침공에 맞서는 같은 시아파인 헤즈볼라를 적극 도왔어. 이런 걸 ‘그림자 전쟁’이라고 불러. 대리세력(proxy)의 전쟁이라는 뜻이지.
Q. 듣고 보니 두 나라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네.
A. 이뿐만이 아니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몰락하자 이란-이스라엘 대결이 본격화됐어. 이란은 후세인 정권이 사라져 중동에서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했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레바논 헤즈볼라-팔레스타인 하마스-이라크의 시아파 정부 등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를 구축했지.
급기야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를 상대로 레바논 전쟁을 다시 일으켰지만 국제적 비난을 받고 물러가야 했어. 헤즈볼라가 이란과 더욱 밀착하자, 이스라엘은 아예 ‘시아파 연대’를 최대 안보위협 세력으로 설정하고 ‘그림자 전쟁’을 본격 수행했지.
Q. 이란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어?
A. 2010년대 들어 이란 핵개발 문제가 부각하자, 이스라엘은 이란 안팎에서 핵과학자 암살, 핵시설 사보타주, 군사시설 타격 등을 주도했어. 2010~2012년 핵개발 과학자 5명 암살, 나타즈 우라늄농축시설 불능화, 혁명수비대 기지 공격을 잇따라 벌였어. 이라크·시리아 등지에서 발호한 무장세력을 이란이 지원하자,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을 겨냥한 직접적 공격도 강화했어.
이란은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비례적 대응’을 삼가고 대신 헤즈볼라·하마스 등을 지원하며 세력을 키웠지. 이들보다 군사력이 월등한 이스라엘은 번번이 전투에선 이겼으나 그림자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보긴 힘들어.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정당성은 훼손된 반면, 공격받는 시아파연대의 영향력은 성장해갔으니까.
Q. 그럼 그림자전쟁에선 이스라엘이 불리한 거야?
A. 사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불명확해. 이스라엘은 이란의 대리세력을 타격하는 가시적 성과를 올릴수록, 상시적인 저강도·비대칭 전쟁을 벌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있어. 대차대조표로 보면 이스라엘의 비용이 더 큰 것으로 보여.
하지만 이란 역시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고 있고, 국내 정치적 불안도 가중되고 있어.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적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이스라엘과 대결이 고조될수록 그 가능성이 멀어지는 셈이지.
Q. 승자도 패자도 없는데 이 전쟁을 얼마나 계속해야 해?
A. 양쪽 갈등이 복잡한 데는 이데올로기 및 종교적 신념이 배경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야.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이란의 이슬람주의는 도저히 타협 불가능해. 시아파 연대세력 또한 생존하려면 계속 이스라엘과 싸워야 해. 그러면 이스라엘 역시 사활을 걸고 이들과 싸워야 하고. 그러면 또 이란은 시아파 연대세력을 지원할 수밖에 없어. 무한반복 같네.
Q. 이번 이란의 공격은 이 무한반복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Q. 만약 이스라엘이 참지 않고 보복에 나선다면 아랍국가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야. 사우디 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이란 주도의 시아파 연대 세력과 대립해 왔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를 목표로 한 아브라함 협정을 추진해왔어. 2010년대 들어 이란과 대결에 힘이 부치자 이스라엘과 은밀히 협력해 왔거든.
그러다 사우디는 지난해 3월 중국 중재로 전격적으로 이란과 수교를 회복했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를 비난하며 발을 빼니까 자구책을 찾은 거지.
이란-이스라엘 대결이 격화되면,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돼. 중동의 지정학적 구도는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복잡한 중동의 정세 탓에 이란의 공격이 어디로 불똥이 튀어서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날지 파파고도 예측이 어려워.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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