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분간 15개 에피소드… 시청률 잡았지만 완성도 놓친 ‘눈물의 여왕’
자극적 설정·디테일한 캐릭터
‘쇼츠형 구성’으로 몰입감 높아
건강한 시한부·재벌가 도청 등
서사 개연성 해치는 요소 많아
“장기적 성공 이어지긴 어려워”
‘사랑의 불시착’ ‘별에서 온 그대’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의 신작인 tvN ‘눈물의 여왕’ 시청률이 20.7%까지 치솟았다. ‘도깨비’를 넘어 해당 채널 역대 2위 기록이다. 1위인 ‘사랑의 불시착’(21.7%)을 뛰어넘는 것도 가시권이다.
그러나 이런 흥행과 별개로 완성도와 개연성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재벌가 ‘며느리’에서 ‘사위’로 초점을 맞춘 역발상은 신선했지만, 나머지 설정은 클리셰투성이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나열하지만 이를 한데 꿰는 큰 줄기는 빈약하다. 그렇다 보니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비하지 못하는 세대를 겨냥한 ‘쇼츠(shorts)의 연결’이라는 분석과 함께 ‘뇌빼드’(뇌를 빼놓고 보는 드라마)라는 평가도 나온다.
단숨에 시청률이 3.3%포인트나 뛰어오른 8회를 분석해보자. 총 러닝타임 87분 안에 대략 15개의 에피소드를 촘촘히 배치한다. 재벌 3세 홍해인(김지원 분)이 전체 대관한 수족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백현우(김수현 분)의 프러포즈 회상 장면이 시작이다. 이후 잠시 기억을 잃었던 홍해인이 백현우의 이혼 서류를 떠올리며 다시 갈등하고, 이혼 변호사로 배우 송중기가 특별 출연한다. 이어 홍해인은 백현우가 자주 찾는다는 순댓국밥집을 찾아간다. 계략을 꾸미던 윤은성은 사나운 개로부터 홍해인을 구해줬던 과거를 떠올리고, 백현우는 윤은성의 한정판 시계를 통해 모슬희와 윤은성의 모자 관계를 파악한다. 이를 전해 들은 홍만대 회장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미리 작성된 위임장에 따라 지분을 양도받은 모슬희가 홍씨 일가를 몰아낸다. 그리고 경영권을 뺏긴 홍씨 일가는 백현우의 고향인 용두리에 입성한다. 평균 6분마다 자극성 강한 에피소드를 새로 제시하며 채널이 돌아가는 것을 막는 식이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는 “인간의 집중력은 20분 정도가 최대치고,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늘어지면 참지 못한다. 게다가 쇼츠 노출 빈도가 늘어나면서 집중 시간은 더 짧아지는 추세”라며 “끊임없이 새로운 에피소드를 던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눈물의 여왕’은 긴 콘텐츠를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안 보는’ 세대에 적합한 구성”이라고 분석했다.
‘눈물의 여왕’의 흐름은 우연과 과장의 연속이다. 긴 호흡의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이혼을 결심한 백현우가 순식간에 사랑의 감정을 회복하는 것은 섣부르고, 시한부 3개월 판정을 받은 홍해인은 지나치게 건강하다. 굴지의 재벌가가 몰래카메라와 도청기에 번번이 노출되는 것은 애교라 치더라도,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빼앗긴 후 신세 한탄하는 모습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그렸던 박 작가이니 ‘판타지’로 이해해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그런 아량으로 각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즐길 수는 있으나 각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고리가 헐거워 터져 나오는 실소까지 참긴 어렵다.
내러티브의 빈곤함을 채우는 건 캐릭터의 매력이다. 이는 조연 캐릭터까지 모두 스타덤에 올려놓는 박 작가 특유의 디테일한 설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예민해질수록 화려하게 치장하는 홍해인과 그의 눈치를 보는 비서진, 특수경호부대 출신답게 위기의 순간마다 홍해인을 구하고 귀여운 술주정까지 선보이는 백현우와 재벌가 사위가 된 동생 덕을 보는 형제 등 웃음과 감동 포인트를 곳곳에 매설해놓았다.
이런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는 에피소드는 각각의 완결성을 띤다. 게임을 하듯 제시되는 사건을 하나씩 타파해가는 공식은 앞서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떠올리게 한다. 답답함을 해소하지 않고 질질 끄는 소위 ‘고구마’ 드라마를 참지 못하는 세태를 반영한 작법이다. 자극적 사건들의 나열이 의도한 설정이라면 박 작가는 오히려 대중의 요즘 시청 행태를 꿰뚫고, 그 결과가 높은 시청률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영화 ‘7번 방의 선물’(2013)이 작품성과는 별개로 1281만 관객을 모았듯, 높은 시청률이 결국 이 드라마의 가치를 입증하는 셈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요즘 시청자들은 ‘의미’보다는 ‘재미’에 초점을 맞춘다. 매력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전개하면서 혼을 빼놓기 때문에 개연성과 완성도는 크게 상관없다는 식”이라면서도 “쇼츠가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하듯, 이런 드라마들이 당장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는 K-드라마의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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