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7차 에너지 기본계획, 탈탄소화와 경제성 사이의 고민[이지평의 경제 돋보기]
탈탄소화에 대한 산업계 반발 해소할 기술 고도화 필요해
경제성장과 함께 탈탄소화, 경제안보, 신산업 육성 등의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에너지 정책은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의 고민과 국민 각 계층의 동참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도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7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준비작업에 나서고 있는데, 각 분야의 탈탄소화 목표 상향과 동시에 경제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23년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에 2035년 온실가스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감축하는 G7 공동성명을 주도했다. 기존의 감축 목표치는 2030년에 2013년 대비 46%였기에 더 강력한 탄소 저감 조치가 필요하게 된 셈이며, 이를 새로운 에너지 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러나 급격한 탈탄소화 규제에 대해 민간 부문의 반발도 나오고 있다. 전임 원자력위원회 의장 등 민간 에너지 전문가 9명이 공동 집필한 ‘Energy Dominance(민간에 의한 7차 에너지 기본계획)’이라는 보고서가 지난 2월 24일 발표됐는데, 보고서에선 일본 정부에 11개 항목을 제언했다. 이들 중에는 전력 요금의 획기적 인하, 파리 국제협약의 탈퇴 및 대체,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제약 억제 등 과감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주장이 전면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탈탄소화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도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일본의 러시아산 가스 및 석유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악화되는 등 에너지 안보 상황이 불안정해지고 수입 에너지 가격, 전력 요금 부담이 가중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결국 단기적인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도 있고, 이로 인한 불만이 확대될 수도 있다. 사실 지구온난화 대책을 후퇴시키려는 트럼프 정권의 등장 가능성, 미국 및 유럽에서의 전기차(EV) 보급 정책 후퇴 조짐 등 정치적 정세 변화가 일본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온난화로 인해 환경 재앙과 농산물 생산 타격 등 생존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으며, 각종 지역 분쟁도 늘고 있다. 일본으로서도 어느 정도 단기적인 비용 부담이나 소비자의 불편함 등을 감수하더라도 탈탄소화 기술 개발과 초기 상용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7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원 비중을 현재 독일 수준인 50% 정도로 대폭 늘리고 전력망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홋카이도에서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본토로 대량 송전하기 위해 송전용량을 3.5배로 확대할 계획도 지난 3월에 결정됐다. 페로브스카이트 등 차세대 태양전지 공급망의 조기 구축 정책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상용화 연구개발이 진전되고 있는 수소·전력 동시 생산이 가능하고 안전성이 높은 고온가스 원자로 등의 차세대 원전 기술개발도 앞당겨지고 있다. 또한 전기차용 차세대 배터리 개발, 각종 산업용 에너지의 친환경 전력 등으로의 전환, 가정과 기업의 에너지 절약 방안 등의 비전이 강화되면서 가정용 히트펌프, 하이브리드 급탕기, 연료전지 등에 대한 보급 지원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의 막대한 전력 수요에 대처한 절전형 반도체 개발 전략도 강화될 전망이다.
일본의 고민과 대응을 보면, 지금은 경제적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과 경로로 산업의 탈탄소화를 선행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술의 고도화로 경제성을 제고하는 선순환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태양광, 풍력, EV, 히트펌프 등 경제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탈탄소 기술의 성능 향상과 대량 보급 정책에 주력하는 한편, 기존 화력발전소를 탈탄소형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탈탄소 사회 이행 과도기에 기여할 수 있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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