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으로 치닫는 ‘45년 앙숙’ [이란,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

이민경 2024. 4. 14. 23: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45년간 이어져 온 앙숙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전까지만 해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란이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를 조직하고 지원하는 등 역내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대립 관계가 성립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적으로
이란, 중동 反이스라엘 세력 지원
핵·미사일 문제도 양국 갈등 심화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45년간 이어져 온 앙숙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전까지만 해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등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다. 팔레비 2대 국왕 모하마드 레자 샤가 집권했을 당시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미사일 요격 시스템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고있다.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이슬람 혁명으로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슬람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게 발단이었다. 혁명 정부는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하고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 지칭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불법으로 점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양국 관계는 1980년대까지 완전히 단절되진 않았다. 1980년 이란과 이라크가 국경 지역인 샤트알아랍 수로의 영유권 문제로 8년간의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은 이란에 무기 등을 공급하며 배후에서 도왔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란에 제공한 미사일은 약 1500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이란이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를 조직하고 지원하는 등 역내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대립 관계가 성립됐다. 특히 1992년 29명이 숨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와 85명이 사망한 1994년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 테러 사건 배후로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목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 악화했다.

이란의 핵·미사일 문제도 양국 갈등을 심화했다. 2005년 당선된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은 당선 직후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지도에서 사라져야 하고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 학살)는 ‘꾸며낸 이야기’라 주장하는 등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겨냥한 공격을 시작하며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과학자 여러 명을 암살했고 2010년에는 악성 컴퓨터 코드 ‘스턱스넷(stuxnet)’을 투입해 이란 내 우라늄 농축 시설 작동을 마비시켰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