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는 왜 구멍이 났나
37년 장기 집권 동안 토지개혁은 실패, 국제사회는 제재
2023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가뭄이 남아프리카 일대를 강타했다. ‘2015년 이후 최악’이라는 엘니뇨 현상(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수온 상승 현상) 탓이다. 1~2월엔 강수량이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월엔 잠비아가, 3월엔 말라위가 각각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4월 들어 짐바브웨가 그 뒤를 이었다.
식량 지원 필요한 인구 270만 명
“짐바브웨 국민 단 1명이라도 굶주림에 굴복하거나, 굶주려 목숨을 잃어선 안 된다. 엘니뇨로 인한 극심한 가뭄 탓에 오늘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한다.”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은 4월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발표했다. 그는 “식량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약 270만 명에 이른다”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딸린 ‘기근 조기경보 시스템’(FEWS)은 최신 자료에서 “2023년 12월1일부터 2024년 2월28일까지 짐바브웨 북부, 북동부, 남서부의 누적 강수량은 지난 40년 평균치의 60~75% 수준에 그쳤다.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터라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때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로 불렸던 짐바브웨의 인구 60% 이상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철저한 인재다.” 힐랄 엘버 유엔 식량권 특별보고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농촌 지역에선 약 550만 명이 가뭄 등으로 식량 위기를 겪고 있으며, 도시 지역에서도 약 220만 명이 빈곤과 물가 폭등 등으로 굶주림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엘버 보고관의 발언 시점은 언제일까? 2019년 11월28일이다. 짐바브웨의 굶주림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란 뜻이다.
남아프리카의 내륙국가 짐바브웨는 1980년 4월 건국한 비교적 신생국이다. 교사 출신으로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던 좌파 성향의 로버트 무가베가 초대 총리를 맡아 국정을 주도했다. 그는 영국령 로디지아 시절 12년여 투옥돼 ‘짐바브웨의 넬슨 만델라’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무가베는 집권 직후 교육과 의료제도를 대폭 강화하는 등 ‘독립 영웅’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실제 1980년 177곳에 불과했던 짐바브웨의 중·고교는 2000년 1548곳으로 대폭 늘었다. 같은 기간 어린이 예방접종률도 25%에서 92%까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2~3%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서방 국가의 원조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무가베 정권이 내세운 ‘인종 화합’ 정책이 짐바브웨와 남쪽으로 국경을 맞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짐바브웨에 약 35억달러를 지원해 ‘최대 원조국’으로 떠올랐다.
37년 장기 집권의 서막
무가베는 1987년 헌법을 바꿔 대통령에 올랐다. 장기 집권의 서막이었다. 당시 짐바브웨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소수 백인이 장악한 토지였다. 1980년 독립 당시 인구의 3%에 불과한 백인이 전체 농경지의 51%를 소유했다. 이 가운데 75%는 500~2000㏊ 규모의 비옥한 상업용 농지였다. 반면 인구의 72%에 이르는 흑인 농민은 전체 경작 가능 토지의 42%만 차지했다. 그나마 흑인 농민이 점유한 토지의 4분의 3가량은 농사짓기엔 척박한 땅이었다. 토지개혁은 신생 독립국의 지상 과제였다.
짐바브웨 독립 세력은 건국에 앞선 1979년 12월 오랜 식민 지배국이던 영국과 ‘랭커스터 하우스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짐바브웨 정부는 백인 농장주가 팔겠다는 의사를 밝힌 땅만 유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짐바브웨 백인 농장주의 권리 보호는 영국이 맡기로 했다. 자발적으로 땅을 내놓은 백인 농장주는 거의 없었다. 1990년 중반 이후 무가베 정권은 ‘강제 수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추진한 개헌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무가베를 지지하는 퇴역 군인을 중심으로 이른바 ‘패스트트랙 토지개혁’이 2000년부터 본격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강제·무상 수용을 통해 확보한 토지가 무가베 일가를 비롯한 집권 엘리트층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짐바브웨 정부가 1980~1998년 백인 농장주한테서 매입한 토지는 350만㏊에 그친 반면, 2000~2010년 수용한 토지는 1080만㏊에 이른다. 유엔은 2010년 8월 펴낸 ‘짐바브웨 국가 보고서’에서 “토지개혁을 통해 23만7천여 가구에 토지가 분배됐다”고 밝혔다.
백인 농장주는 저항했다. 국제사회의 비난도 격해졌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도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미 재무부에 딸린 국외자산통제실(OFAC)은 2003년 3월 무가베를 포함한 짐바브웨 정부 주요 당국자와 그 가족 등 개인 128명과 기업 등 33개 단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접촉과 거래를 금지했다. 짐바브웨 통화가치는 급락했다. 외국인 투자와 원조도 급격히 줄었다. 2021년 짐바브웨를 방문한 알레나 두한 유엔 일방적 강압조치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제재가 기존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면서 짐바브웨 국민, 특히 빈민·여성·어린이·노약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치명적 결과를 불러왔다”고 짚은 바 있다.
미국, 현 정권에 신규 제재 부과
무가베는 2017년 11월 쿠데타로 37년 만에 권좌에서 축출됐다. 쿠데타 직전 무가베가 해임한 에머슨 음낭가과 전 제1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급거 귀국해 정권을 인수했다. 은퇴한 독재자는 2019년 9월 싱가포르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95. 음낭가과는 2023년 8월 부정·편법 선거 논란 속에 재선에 성공했다.
미 재무부 국외자산통제실은 2024년 3월4일 짐바브웨에 대한 기존 제재를 20여 년 만에 해제하고, 음낭가과 대통령 부부와 콘스탄티노 치웽가 부통령 등 11명과 3개 기업에 대한 신규 제재를 부과했다. 음낭가과 정권이 금·다이아몬드 등 귀금속 밀수 조직을 비호하고, 불법 채굴된 귀금속을 암시장에 유통시키는 데 공무원을 동원하는 등 부패와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굶주린 짐바브웨는 누가 도울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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