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나도 구해달라곰”… 갈 곳 없는 ‘사육곰’ 160마리
2026년부터 곰 사육 전면 금지돼
전국 284마리 사육곰 갈 곳 찾아야
사육곰 수용할 보호시설 부족하고
사육곰 어떻게 매입할지 대책 없어
“나는 한평생 철창 속에 갇혀 살았어요. 곰으로서의 본능과 누려야 할 자유, 권리를 모두 박탈당한 채 고통스러운 삶의 나날을 보냈어요. 내 친구들은 감옥 같은 이곳을 탈출했다가 사살되거나, 나이가 들고 병이 생겨 흙바닥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어요. 우리는 인간의 욕심으로 ‘목적에 맞게 사용되기 위해’ 태어난 곰이에요. 나는 언제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나요?”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까맣고 반짝거리는 눈, 촉촉한 코, 가슴에 반달 모양 무늬를 가지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입니다. 국내에서는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죠. 하지만 어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어떤 반달가슴곰은 평생을 철창 속에서 살아갑니다. 대다수의 사육곰은 반달가슴곰이지만 한반도의 반달가슴곰과는 다른 아종으로,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생태계 교란 우려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도 쉽지 않죠. 또 사육곰은 평생 갇혀 살았기 때문에 자생능력도 떨어집니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과 철창 속의 사육곰은 같지만 다른 곰인 것.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습니다. 곰을 수입해 키운 뒤, 웅담을 채취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죠. 많은 농가들이 사육곰 산업을 위해 곰을 수입했고, 사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달가슴곰은 1973년 채택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이미 세계적인 멸종 위기 야생동물로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수입과 수출 등이 금지돼 있었고, 뒤늦게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한 정부는 1985년 곰의 수입·수출을 금지했습니다. 1993년에는 한국도 CITES에 정식 가입하며 곰의 재수출까지 금지시켰죠.
하지만 이미 국내에는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곰들이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수입한 곰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죠. 사육곰을 수입하지 못하자 기존에 들여온 곰들에게 자식을 낳게 해 인공번식을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2005년에서야 야생동물식물보호법 시행으로 사육곰 처리 기준을 마련하면서 사육곰 관리를 각 지자체에서 환경청으로 이관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증식 금지를 위해 사육곰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인공번식을 법적으로 규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국회에서 사육곰의 소유·사육·도축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40년 넘게 이어져 온 사육곰 문제에 마침표를 찍은 법안이죠.
하지만 사육곰을 위해 해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남아있습니다. 현재 전국 18개 농가에서 284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2026년이 되기 전까지 현재 사육 중인 곰들이 갈 곳을 찾아야 합니다. 2026년부터는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곰을 어떻게든 처분해야 합니다. 2025년 말까지는 열 살이 넘은 사육곰의 도축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법 시행 전까지 사육곰을 데려오지 못하면 곰들의 죽음은 자명합니다.
사육곰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농장주들로부터 사육곰을 매입해야 합니다. 환경부는 곰들을 매입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동물 단체에게 일임했습니다. 사육곰을 개사료만 먹여서 10년 동안 키웠다고 가정했을 때, 곰 한 마리의 값어치는 2000만 원 정도입니다. 상당수의 농가가 사육곰을 팔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동물단체 측이 매입 비용으로 300만~400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금액 차이가 상당합니다. 동물단체가 매입할 수 있는 금액을 한참 넘어섰죠.
매입 문제와는 별개로 환경부는 구조되는 곰들을 수용해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충남 서천과 전남 구례에 건립할 예정입니다. 두 보호시설에는 모두 120여 마리의 곰을 수용할 수 있죠. 하지만 곰은 284마리입니다. 남은 160여 마리의 곰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법 시행까지 2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보호시설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곰이 보호시설로 들어가고, 어떤 곰이 보호시설로 들어가지 못하게 될 지도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동물단체가 마련한 사설 보호시설에 최대한 많은 곰들을 수용하기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모든 곰들을 다 데려오기엔 역부족입니다.
“농장에도, 보호시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남게 될 160여 마리의 곰들에 대한 대책이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정부에서는 나머지 곰들이 그저 도살되기를 바라고 있죠. 저희 쪽에서도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지원되는 예산도, 땅도 없어서 한계가 뚜렷합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대표는 곰 매입 금액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정부 예산으로 곰들을 구조하는 등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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