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이슬람혁명’ 후 급랭…가자전쟁 후 ‘원수’로
1970년대까지는 유대관계
이란, 혁명 정부 들어서며
이스라엘 ‘이슬람 적’ 규정
이란, 헤즈볼라 물밑 지원
핵 실험 재개 놓고 대립각
가자 사태로 최악 치달아
이란이 13일 밤(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을 하면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악화돼온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전까지만 해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등 우호적인 성향을 보였다. 팔레비 2대 국왕 모하마드 레자 샤가 집권했을 당시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혁명 정부는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했으며,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 불렀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불법 점령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다만 양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 협력했다. 1980년 이란이 ‘샤트알아랍 수로’의 영유권 문제로 이라크와 8년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은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며 배후에서 지원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란을 통해 이라크를 견제하고 이란 내에서의 영향력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란이 레바논과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를 조직·지원하며 양국 관계는 또다시 악화일로를 걸었다. 1992년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로 29명이 숨지고,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 테러로 85명이 사망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후원하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 사건들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했다.
이란의 핵·미사일 문제도 양국 갈등을 심화했다. 2005년 이란 새 대통령에 오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평소 ‘이스라엘이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등 과격한 발언을 내놓은 인물이었는데, 당선과 동시에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과학자 여러 명을 암살하고, 2010년에는 악성 코드를 이용해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가자전쟁으로 양국 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사태 초기에는 이란의 대리 세력으로 불리는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 측에 드론 공격을 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고, 이란이 12일 만에 보복 공습을 감행하면서 양국은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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