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선 지재권 이야기] 상생을 위한 상표 공존동의제
기업상표권 관리 큰 도움
당사자 양보와 합의 필요
상표 공존동의제도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있던 제도로, 해외출원인들은 한국에서 공존동의서를 통해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특허청의 심사태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상표의 유사범위를 넓게 보는 경향이 있어 실제 거래사회에서 출처의 오인·혼동 없이 사용이 가능한 경우에도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거절된 상표의 40% 이상이 선행상표와 동일·유사하다는 이유로 거절되었으며, 해당 거절상표의 출원인 가운데 82%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었다.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해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고 확장시켜 나가려던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들이 사업 초기에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따라서 선행상표권자와 연락하거나 협상을 할 수 없는 출원인들은 사용되고 있지 않는 선행상표인 경우에는 불사용을 이유로 취소심판을 하고 최종적으로 선행상표의 등록이 취소될 때까지 기다려 장애가 되는 상표를 제거하고 등록하는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면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도 회사의 대표자 명의로 출원된 상표와 법인 명의로 출원된 상표가 서로 충돌이 있거나, 본사와 계열사가 각각 출원한 상표에 그룹 대표명칭이나 로고가 공통으로 포함되는 경우 사업 초기에는 해당 상표를 양도했다 재양도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법인의 상표권 양도 및 재양도 행위 자체가 법인의 자산을 타 법인에 유상 또는 무상으로 매각하는 것이므로 매번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사회적 비용과 행정불편이 늘고 있었다. 대규모 기업집단도 계열사가 공동명의로 상표권을 갖거나 지주회사가 상표권을 등록하고 계열사들에 이에 대한 상표사용료를 징수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리·독립된 계열사, 투자를 통해 지분을 인수한 회사가 늘어가면서 이를 일괄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렵고 업무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또한 상표사용료 수준에 따라 자칫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계열사 부당지원행위 또는 상표사용료를 통해 기업 총수가 기업의 이익이나 자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사익편취 행위로 고발당할 수도 있어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상표 공존제도 도입으로 그동안 복잡했던 기업의 상표권 관리 및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과거 대리했던 사건 중에 같은 날 우연히 동일한 상표가 출원되어 상표법 규정에 따라 추첨으로 상표등록을 할 사람을 결정하는 일이 있었다. 특허청에서 만난 두 출원인은 펜션운영자들이었는데 서로 영업하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누가 추첨되더라도 상대방도 그 상표로 계속 영업하도록 하자고 결정했다. 공존합의제도가 시행되기 훨씬 이전부터 거래업계에서는 서로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 발생 시 법률에만 기대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관련 당사자의 양보와 합의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성숙된 의식이 필요하다. 상표 공존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열린 태도가 필요하며 상대방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시장질서를 공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최효선 한국상표·디자인협회 회장, 광개토특허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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