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선거는 끝났고 이제 사법부의 시간
총선 승자들이 기고만장(氣高萬丈)하다. 조국 대표는 총선 이튿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김건희 여사를 소환 조사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고가 백 받은 것과 주가조작 관련 의혹을 든 것인데, 다툼과 경중이 있는 사안이고 나라꼴을 고려할 때 그러기는 어렵다. 검찰청으로 쫓아간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그의 진짜 용무는 바로 그 옆 건물 대법원에 있었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기일이 어떻게 잡히냐에 그의 의원 수명이 달렸으니 대법원에 위세를 보여야 하지 않았겠나.
더불어민주당도 공세가 거세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과 여당이)사실상 탄핵에 가까운 불신임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 수용을 대여 첫 카드로 꺼냈다. 이재명 대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지만, 그 속에 뼈가 있다. 그는 현충원 참배를 하면서 "(영수 회담을) 지금까지 못 한 것이 아쉬울 뿐"이라며 "야당과의 협조와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회담은 조 대표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자연인 이재명이 아닌 야당 대표 이재명을 왜 만나지 않아 입법 협조를 받지 못했느냐는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정치' 아니냐고 한다. 이 때 꼭 따르는 게 '정치 신인'이란 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볼 문제다. 그 원인을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안 만난 데로만 귀결시켜야 하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야 법을 통과시켜 주는 사람인가. 하물며 새 정부가 출발하면서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해온 첫 입법이 정부조직법 개정인데, 이마저도 거부했다. 물론, 대통령은 무한 책임의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책임이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이번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의 국정 내용이 아닌 '형식'에 대한 판단이라는 시각이 많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민주 헌법 가치 구현 기조는 백번 옳다. 동맹 및 선린 외교, 경제 회생을 위한 규제철폐와 기업 지원, 의료개혁 추진은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표심은 사전에 야당과 충분히 대화하지 않은 점과 공론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발표하는 등의 형식에 대해 심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야당 두 대표들이 만난다고 해서 국정 문제들이 술술 풀릴까. 야당 두 사람에게는 심각한 사법 리스크가 있다. 이 대표는 7가지 사건에서 10개 혐의를 받고 있고 3개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중에서도 위증교사 혐의는 작년 10월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때 판사에 의해 유죄 입증됐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적잖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혐의가 정치적 공세라는 것이다. 부동산업자에게 4단계나 용도 변경해 수 천 억원의 특혜를 안겨준 지자체장의 행태가 정치적으로 판단할 일인가. 세금(법인카드)으로 일제 샴푸 사고 소고기 사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일부 공직자도 그러는데 왜 이 대표만 문제 삼느냐는 사람도 있다. 기가 막힌 견강부회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오만한 태도'는 참을 수 없고, 이·조 두 사람의 범죄 혐의는 괜찮다며 표를 준 것인가.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만남을 요구하기 전에 이 대표가 구속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먼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이 대표를 변호해 당선된 변호사는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니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법부를 협박하고 법치에 도전하는, 일고의 가치 없는 망언이다.
사법부가 판단의 최종결자여야 하는 데에는 정치적 압력에서 차단된 '냉철한 재고(再考)'가 필요하다는 법학자 알렉산더 비켈의 준엄한 정언(定言)이 있다. 비켈은 "선거로 뽑힌 '민주적 권력'이 오만해져 사회의 기본 가치를 훼손할 경우 그것을 비판하고 또 막을 수 있는 곳은 '냉철한 재고'를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법관"이라고 했다.(이상돈 '시대를 걷다'에서 재인용) 이번 총선은 우리 사회 도덕과 가치가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줬다. 선거가 못한 일을 사법부가 해야 할 차례다. 선거는 끝났고 이제 사법부의 시간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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