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공동화 수반되는 윔블던 현상…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험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1년5개월만에 최고치
외국인 자금 들어오고
국내 개미는 밖으로 나가
기업 경영권·공동화 우려
선제적 방지책 강구해야
지난주 말 원·달러 환율이 1380원대로 급등했다. ‘킹달러’, ‘갓달러’라는 용어가 나왔던 2022년 11월 이후 1년5개월 만에 최고치다. 과연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자금 이탈과 악순환 고리를 부를 것으로 예상되는 1400원을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대내외 환율 변수는 1년5개월 전과 너무나 유사하다. 원·달러 환율뿐만 아니라 양대 대외 환율 변수인 달러인덱스와 위안화 환율이 각각 105대, 달러당 7.1위안대로 같다. 코스피지수는 오히려 300포인트 정도 더 올랐다. “국내 금융시장은 문제가 없다”는 일부 경제관료의 자화자찬에 귀가 솔깃할 만큼 외형상으로는 문제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년5개월 동안 외국인 자금은 추세적으로 들어온 반면 내국인 자금은 밖으로 나갔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의 초안을 내놓은 지난 1월 중순 이후에는 외국인 자금 유입액과 내국인 자금 이탈액이 거의 일치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손님은 들어오고 주인은 나가는 자본 공동화가 발생하면서 국내 자본 시장의 외국인 의존도가 심화하는 윔블던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윔블던 현상이 심했던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가 국내 기업과 금융사의 해외 점포 마련 등을 위한 실수요 이외에는 없었다.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때였다. 최근처럼 자본 공동화가 수반되지 않았고,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지 여부에 따라 윔블던 현상이 나타났다.
윔블던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 제도 및 감독 기능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역기능이 우려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포트폴리오의 위상이 선진국인 영국과 달리 우리는 MSCI지수상으로 신흥국이다. 최근 윔블던 현상이 무서운 것은 포트폴리오상 지위가 신흥국이면서 자본 공동화까지 수반돼 역기능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4·10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입법적 한계를 깨지 못한 정책 여건에서 외국인 자금은 금융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현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 경제 주권의 약화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여건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하고 국부 유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윔블던 현상이 심화할 때마다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키위 뱅크’와 같은 국영 은행을 세워야 한다거나, 국민연금(NPS) 등 공적 연기금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글로벌 펀드가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가는 행동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추세다.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높아진다. 이 밖에 소득불균형을 가중해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서든 스톱’, 즉 잘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곧바로 유출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다. 최근처럼 국제 자금 흐름이 각종 캐리 트레이드 자금에 의해 주도되는 여건에서는 우리 주가와 경기 향방, 그리고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은 서든 스톱 발생 여부와 현 정부의 대응에 좌우될 확률이 높다.
현시점에서 우리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돌려놓는 역행적 시장 개입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 자금의 서든 스톱이 발생한 확률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 될수록 주가 저평가 정도와 환차익 소지가 감소해 이미 고수익을 얻은 스마트성 외국인 자금이 차익을 실현해 선도적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금융시장을 유일하게 받쳐주고 있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서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갑자기 대혼란에 빠지는 ‘싱크홀형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당국은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조기경보체제(EWS)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검토하고 선제적 위기방지책을 강구해 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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