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방위란 무엇인가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4. 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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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0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장에 도착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11일에는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염두에 두고 미-일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지휘체계 개선, 무기 공동개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요컨대 자위대나 일본의 방위산업을 미국의 안보정책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로 20%대라는 최저 지지율이 계속되고, 언론에서도 강하게 비판을 받던 기시다 총리는 이번 미국 방문을 국면 전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의 군사적 확대가 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해 역사에 남을 안보정책의 전환을 실현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미·일 외교를 지렛대로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전술도 관측된다.

기시다 정권에서는 2022년 국가안보전략 등이 개정되면서 5년 동안 방위비를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2%로 두배가량 늘리는 것이 결정됐다. 최근에는 영국·이탈리아와 공동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에 대해 제3국 수출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일본은 무기 수출이 금지됐던 나라다.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 전 총리는 1976년 당시 외무상 시절에 국회에서 “우리나라는 무기 수출을 해서 돈을 벌 정도로 비참한 상태가 아니다. 좀 더 높은 이상을 가진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뒤, 미야자와 전 총리의 파벌을 계승한 기시다 총리는 ‘높은 이상’을 버렸다.

이처럼 군사적 안보정책에 치우친 기시다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올 1월1일 새해 첫날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강진이 발생해 245명이 사망했다. 파괴된 건물의 재건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피해가 컸던 것은 정부의 초동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지진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매년 태풍과 집중호우로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일본인에게 생명과 관계된 구체적인 위협은 자연재해다.

저출산과 인구 급감은 한·일 공통의 문제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가 너무 심각하다. 인구 감소로 의료와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공급이 곤란해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철도 노선 폐지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철도회사의 의견 대립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기시다 정권은 식량·농촌·농업기본법의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처음으로 식량 안보를 정책 목표로 삼고 식량 수입의 안정적인 확보, 국내 농업의 생산성 향상, 비상시 농업인에게 특정 작물의 생산을 지시할 수 있도록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식량 수입이 중단된다.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리려 해도 농업 종사자는 빠르게 고령화가 되고 있고, 정보통신(IT)과 기계 활용을 확대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식량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선 외부의 적보다 내부에서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군사적 안보에 치우친 정부의 정책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력 증강이 필요한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위비의 규모와 사용처에 대해서는 어떤 기능을 가진 장비가 필요한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 야심을 위해 미국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이나 미·일 군사체계 일체화를 약속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다. 향후 국회 논의에서 안보의 의미를 폭넓은 시야에서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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