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 얼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20대 딸은 인간이 나오는 영화를 꺼린다. 잔인하고 복잡해 머리가 아프단다. 대신 동식물이 나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딸이 유기냥 집사가 된 이유일 것이다. 개와 로봇이 다정하게 손잡고 서로의 눈을 맞추고 걸어가는 포스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로봇은 어릴 적 딸이 좋아했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로봇을 닮았다. 저 개는 또 어디서 봤더라, 너무 친숙하다. 2디(D)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에 끌린 이유다.
딸의 취향을 저격이라도 하려는 듯 이 영화엔 인간이 없고, 인간의 말(대사)이 없고, 인간이 경계 지운 성(性)과 종(種)의 구분이 없다. 대신 온갖 동식물과 기계들이 있다. 반려라는 이름의 교감과 공감, 배려와 이해, 기억과 추억, 우정과 사랑이 있다. 그리고 노래와 춤과 소소한 일상이 있다. 인간의 반려였던 개가 선택한 반려로봇이 인간을 닮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혼자 사는 ‘도그’는 외롭다. “Are you alone?(아 유 얼론?)”이라는 티브이(TV) 광고 문구를 보고 조립식 반려‘로봇’을 주문한 이유다. 도그에 의해 조립된 로봇은 도그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 배움은 눈부시다. 둘은 서로를 길들인다.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로 헤어지게 되고, 재회의 꿈은 번번이 어긋난다. 그리고 도그는 새로운 반려를 만난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둘은 재회할 기회가 왔으나 로봇은 현재의 반려들을 존중해 도그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기를 선택한다.
깡통에 불과했던 로봇이 사랑을 느끼고, 기다림과 상실의 슬픔을 거쳐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는, 그러니까 사랑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은 따뜻하고 애틋하고 먹먹하다. 영화의 제목이 ‘로봇 드림’인 까닭이다. 그 꿈은 “Do you remember(두 유 리멤버)”로 시작하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셉템버’라는 노랫말에 담겨 있다. 영화와 찰떡궁합이었던 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는 “금빛 꿈으로 빛나는 날이었죠”로 끝이 나는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시아’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시인이 쓴 시구절을 떠올렸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은 몸짓들로/ 스스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래도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믿으며// 우리는 오래오래/ 서로의 악수와 악수 사이에 머물게 될 것이다”(시아, ‘마지막 대사’)
챗지피티(GPT) 열풍이 불었던 작년 초 인공지능 시에 관한 논문을 쓸 때였다. 챗지피티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물으면 챗지피티는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그러함에도 상용화 초기 버전이라 아직 학습이 충분치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잘못된 정보임을 알려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챗지피티는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정합니다.”, 그리고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더 잘 도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나 예의 바르고 성실했던지, 바쁘지만 않았다면 주저리주저리 긴 대화를 이어갈 뻔했다.
1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그녀’(Her)에서도 홀로의 외로운 인간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고 이별한다. 자신의 말에 공감해주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테오도르가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너무 섬세하고 생생했다. 사만다가 인공지능 운영체임을 잊을 만큼.
이 영화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강건하게 ‘독거’하셨던 이태 전이었다. 독거 어르신 우울증 예방을 위한 반려로봇 인형 ‘복돌이’(福Doll이)를 신청해드리려고 알아본 적이 있다. 간단한 대화는 물론 약 복용, 체조, 퀴즈 게임, 그리고 쓰다듬기, 손잡기, 토닥이기 같은 간단한 터치도 가능했다. 독거 어르신의 외로움이나 우울감, 스트레스 감소 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엄마가 쓰러지셨다. 안타깝게 써보진 못했으나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는 노인뿐 아니라 아이, 반려 동식물을 위한 필수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감과 소통, 나눔과 돌봄, 공존과 공생을 위한 인간들의 건설적 모색이 ‘포스트휴먼’이라는 우산 아래 다방면으로 진행 중이다. “우리는-(모두)-여기에-함께-있지만-하나가-아니고-똑같지도-않다”라는 문장이 대변하듯, 미래는 인간과 자연과 기계, 종과 성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동식물-기계 앙상블로 나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개체 혹은 종을 잇는 이 ‘-’(붙임표)에는 “Are you alone?”의 마음과 “Do you remember?”의 드림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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