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의당 재건의 시작은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기자 2024. 4.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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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일 전날인 지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준우 녹색정의당 대표 등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혜정 | 정치팀장

예견된 결과였지만 실제 현실로 나타난 ‘0석’은 씁쓸했다. 어렵게나마, 원내 진보정당의 명맥을 이으며 제3당의 자리를 지킨 녹색정의당은 22대 국회에서 만날 수 없다. 4·10 총선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녹색정의당은 이제 광야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한국 정치 지형에서 원외정당의 공간은 매우 좁다. 법안 발의와 처리, 정책·예산·인사 등 주요 국정 현안을 둘러싼 정부·여당과의 협상·견제와 다른 야당과의 연대·경쟁 등은 모두 국회의 몫이다. 목소리는 낼 수 있으나 주목받기 어렵고,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안해도 공론장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기 어렵다. 게다가 이번엔 원내 12석을 갖게 된 조국혁신당이 ‘정권 조기종식’까지 내건 마당이어서, 강도 높은 정부 비판으로 선명성 경쟁에 뛰어들어도 남는 게 없다. 녹색정의당으로선 ‘정치’도, ‘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악조건을 넘어설 출발점은, 식상하지만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아닐까 싶다. 짧게는, 4년 전 2020년 총선 때 9.7%였던 정당 득표율이, 왜 이번엔 정당 해산 기준(총선 정당 득표율 2% 이상)을 간신히 넘은 2.1%로 급전직하했는지부터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견고한 양당 체제, 모든 의제를 집어삼킨 정권 심판론, 조국혁신당 돌풍 따위를 탓할 때가 아니다. 언제는 거대 양당이 없었나? 정부·여당에 성난 유권자들에게 정권 심판의 도구로, 조국혁신당보다 매력 있는 존재로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뭘까?

우선 생각해볼 대목은 ‘심상정·노회찬 이후’를 이을 인적 자원이다. 녹색정의당에서 비례대표 이후 다음 총선 때 지역구에서 이겨 경쟁력을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례 1번’을 받은 류호정 전 의원(현재 탈당 뒤 개혁신당 소속)은 의정 활동보다 대리 게임, 수행비서 부당해고 같은 논란이나 ‘튀는’ 언행이 더 주목받았다. 차기 주자로 거론되던 몇몇은 추문으로 정치를 그만두거나, 당 노선을 둘러싼 이견 등으로 탈당했다.

녹색정의당이 추구하는 “노동정치, 기후정치, 성평등정치”가 생활인의 삶에 제대로 소구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노동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이중시장을 지나, 비정규직 안에서도 계층·계급의 분절이 심화하며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과제지만, 당장 하루가 급한 이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성평등도, 일부 남성들의 반발만 문제가 아니라 나이,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직업 등 각자 상황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다. 세가지 모두,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녹색정의당의 ‘품’은 왜 넓지 못했을까다. 사안이 발생하면 의견그룹 사이에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게 진보정당의 전통이지만, 이번엔 총선 전략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여러 세력들이 탈당했다. 물론 당 총선 전망이 밝지 않다는 판단 아래 각자도생한 측면이 있지만, 정치(력)의 기본인 협상과 합의를 내부에서조차 이뤄내지 못하는 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손잡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한 것처럼, 가치를 지키려면 상대에게 선을 그어선 안 된다. 만약 당시 민주노동당이 ‘보수정당과 협력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면, 노인빈곤 저지의 최후 보루인 기초연금 도입은 더 늦어질 수 있었다.

다행히, 재건의 불씨는 있다.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다 낙선한 장혜영 의원이 낙선 인사 이후 3일 만에 후원금 한도(3억원)를 넘겼다고 한다. 장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이를 알리며 “자신은 최저시급 노동자라서 나의 한시간을 보낸다며 9860원을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고 적었다. 맞다. 녹색정의당은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가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넘어, ‘6411’ 버스 첫차에 오르는 이들을 보듬는 정당이어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기엔 이들의 삶이 너무 고되다.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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