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악동' 카텔란 묶어둔 伊 화랑, 韓 진출
마시모데카를로, 스튜디오 열어
"프리즈 서울에서 잠재력 봤다"
베네치아비엔날레 대표 작가
마시모 바르톨리니로 첫 전시
한 중년 남성이 새하얀 전시장 벽에 은색 테이프로 고정돼 있다. ‘미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환금성에 매몰된 현대미술을 풍자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완벽한 하루’(1999)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카텔란의 기획전을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뇌리에 각인됐을 작품 중 하나다.
파격적인 퍼포먼스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벽에 걸린 남성의 정체다. 작품의 주인공은 마시모 데 카를로(65). 카텔란의 작품 판매를 전담하는 갤러리스트이자 세계적으로 60여 명의 ‘전속 작가 군단’을 거느린 마시모데카를로갤러리 대표다. 소속 작가인 카텔란의 전시 흥행을 위해 벽에 세 시간가량 매달린 끝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갤러리스트의 갤러리스트’로 꼽히는 그가 다음 행선지로 서울을 지목했다. 지난달 말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 잡은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 문을 두드리면서다. 이로써 서울은 1987년 개관한 이탈리아 밀라노 본점을 시작으로 런던 파리 홍콩 베이징의 뒤를 이어 갤러리의 여섯 번째 거점이 됐다.
데 카를로는 ‘약사 출신 갤러리스트’란 독특한 이력이 있다. 1958년생인 그는 약사로 일하던 중 실험 음악에 매료됐다. 콘서트 기획 프로듀서를 병행하다 현대 미술로 관심사를 넓혔다. 1987년 밀라노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열었다. 야간에 약국에서 근무하고, 낮에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갤러리의 주요 특징은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이다. 설립 초기부터 존 암레더, 올리비에 모셋 등 이탈리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 출신의 떠오르는 추상화가 시야오왕, ‘번역된 도자’ 연작의 이수경,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60여 명의 작가와 협업하고 있다.
데 카를로 대표의 건축에 대한 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 있는 각 갤러리 지점은 상징적인 건축물에 들어섰다. 본사 건물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 피에로 포르탈루피가 1930년대 설계한 ‘카사 코르벨리니 바서만’이다. 런던 지점은 1723년 지어진 건물로, 준공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한 건 2016년 홍콩에 갤러리를 열면서다. 2013년 아트바젤홍콩 출범 이후 ‘아시아 미술 시장 최대어’로 자리 잡은 홍콩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2021년에는 베이징에 진출했다. 데 카를로 대표는 아트바젤홍콩 선정위원회 멤버로 활동하는 등 아시아 문화계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마시모데카를로 서울 스튜디오가 문을 연 것은 최근 급부상한 한국 미술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전통 강호이던 홍콩이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 지정학적 위험 등으로 위축되며 아시아 미술 시장의 ‘큰손’이 한국으로 몰리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갤러리 관계자는 “2022년과 2023년 프리즈 서울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둔 뒤 새로운 아티스트와 관람객을 만나기에 서울이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스튜디오 개관 기념으로 선보이는 첫 전시는 이탈리아 작가 마시모 바르톨리니의 개인전이다. 회화부터 조각, 영상, 사진, 설치미술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이탈리아 현대미술계의 중심에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달 20일 개막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의 대표 작가로도 선정됐다.
이번 전시에는 바르톨리니가 2023년 제작한 ‘이슬(Dew)’ 연작 5점이 걸렸다. 아침 이슬의 가벼움에서 영감을 얻은 평면 회화다. 부드러운 단색조의 에나멜 표면에 실리콘 물을 분사해 반짝이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서울 스튜디오를 방문하려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 바르톨리니 개인전은 5월 초까지 이어진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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