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

신헌철 기자(shin.hunchul@mk.co.kr) 2024. 4. 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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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10년씩 집권 공식
尹 법칙 깼으나 입법권 내줘
5년 내내 여소야대는 처음
'권력=공공재'라는 인식부터

사람은 대개 일생을 10년 단위로 살아간다. 세대 구분도 10년을 단위로 삼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도 10년을 주기로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주고받았다.

보수는 성장을 통해 잘사는 길을, 진보는 분배를 통해 더불어 사는 길을 제시했다. 국민들은 10년마다 균형추를 절묘하게 이동시키며 지나친 우경화나 좌경화를 피해 나갔다. 노태우·김영삼의 10년을 지나 김대중·노무현의 10년, 그리고 이명박·박근혜의 10년이 그런 세월이었다. 최루탄 가득한 광장에서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는 30년간 좌우를 오가며 그래도 한국을 지탱했다. 이 같은 법칙에 균열이 생긴 상징적 사건이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에 터졌다. 22대 총선의 야단법석 뒤에 맞이하는 세월호 10주기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정부가 3년 뒤 탄핵으로 무너진 시작점이었다. 세월호는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숨 가쁘게 거치며 모래 위에 쌓아 올렸던 바벨탑이었다. 보수 정당이 내세웠던 능력주의, 성과주의와 오버랩되며 진보 정당에 세월호는 현몽이 됐다. 결국 진보가 탄핵으로 정권을 되찾고 국회 180석을 얻어내자 민주당 내에선 20년 집권도 가능하다는 자만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불과 5년 뒤 '윤석열 대(對) 이재명'의 싸움에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국민들이 부동산 급등에서 진보의 무능을 깨닫고, 원전 폐기와 세금 인상 등 지나친 좌경화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뒤로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운 좌파 일각의 위선에 실망한 탓도 컸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한 보수는 진보로부터 권력의 '유효기간'을 5년 앞당겨 물려받은 점을 망각했다. 여전히 유권자 지형은 진보 우위라는 점을 인정했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5%포인트를 더 얻었으나 이번 총선에선 국민의힘이 6%포인트를 졌다. 경기도에선 민주당의 득표율 격차를 더 키웠다. 연령별로는 4050의 진보 우위가 바뀌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탄핵을 거치며 위기에 처했던 보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부활했다고 생각했지만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선거였다"며 "보수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시점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여당 패배의 원인은 자명하다. 사태의 해결도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진보의 위선보다 더 혐오한 것은 보수의 오만이었다.

정치 경험이 적었던 윤 대통령과 참모들은 정치권력은 사유재가 아니며 5년간 위임받은 공공재라는 점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여당은 국정 운영 기조 변화를 요구할 타이밍이 왔을 때도 충돌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거대 야당은 지난 2년간 한 일 자체가 없는데 '야당 심판론'으로 맞선 것도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부작위와 위선에 대한 심판론은 멀고 현존 권력에 대한 심판론은 가까웠다. 이번 총선을 대선의 연장전으로 치러선 안 될 일이었다는 얘기다. 어찌 됐든 이제 한국 정치는 가보지 않은 길에 접어들었다. 대통령 단임제가 시작된 이래 5년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 처했던 정권은 없었다. 권력 분점의 장기화는 상수가 됐다.

앞으로 3년, 그리고 그 끝에서 기다리는 대선은 또 어떤 결과를 낳을까. 보수 정권의 시간이 5년 더 연장될 것인가, 아니면 진보가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을 것인가. 만약 후자가 된다면 그 이후로도 행정권력이 5년마다 손바뀜하는 형태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긴 호흡의 국가 담론은 사라지고 임기응변과 포퓰리즘이 더 판을 칠까 우려된다.

국민들은 정치가 희망과 편안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살림살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원하고, 지옥 같은 출퇴근길이 편해지길 소망한다. 아이들 키우기 좋은 세상, 국가가 최후의 보루가 돼주는 세상을 바란다. 선거와 달리 정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협치의 과실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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