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정세 분수령 미·일동맹 강화…한국은 시험대에 [뉴스분석]

박민희 기자 2024. 4. 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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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1일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정상회의를 하기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과 미-일-필리핀 정상회의는 동아시아 질서의 중요한 분수령이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지형에도 근본적 변화의 신호다. 미국은 일본을 ‘국제질서 수호의 공동의 책임자’로 선언했고, 일본은 군비를 강화해 중국 견제의 핵심 역할을 맡는 동시에 영향력을 크게 강화했다. 한국이 어떤 원칙을 세우고 대응할지 과제가 커졌다.

미국이 이런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한 것은 뿌리가 깊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테러와의 전쟁 실패로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전략가들은 중동 등 다른 지역에 대한 개입을 줄여 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동맹국들이 더 많은 역할과 비용을 부담하는 전략을 구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전환’(Pivot to Asia) 정책에서 시작된 이 변화의 흐름이 지난해 한·미·일 정상의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거쳐, 이번에 미·일이 ‘글로벌 파트너’로서 안보 일체화를 선언하면서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망의 기본틀을 완성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현재 바이든 행정부까지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이 전략을 설계하고 지휘해왔다.

그동안 동아시아가 한미, 미일, 미-필리핀 등 양자 동맹을 맺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수레바퀴형 구조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여러 소다자 동맹구조를 확대해 촘촘히 묶어가는 ‘격자망’의 그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오커스(미·영국·호주 안보협의체), 쿼드(미·일·호주·인도 안보협의체), 미-일-필리핀 등 이런 그물망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 또는 초청이 늘어날 것이다. 남중국해와 대만에 인접한 동중국해에서 한국의 군사적 역할 요구도 커지고 있다.

당장 오커스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가 부상했다. 군사협력체 성격이 강한 오커스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핵 추진 잠수함을 제공하기 위한 ‘필러 1'과 인공지능·양자컴퓨팅·사이버 안보·해저기술·극초음속 미사일 등 8개 분야 첨단 군사 역량을 공동 개발한다는 ‘필러 2'로 나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의 오커스 참여를 공식화했다. 이어 미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일본 외에 한국, 캐나다, 뉴질랜드를 추가 파트너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는 곧바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주 “우리 정부는 첨단기술 등 여러 전략적 분야에서 오커스와 협력하는 데 열려 있는 입장이고, 또한 긴밀히 교감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어떤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참여할지가 핵심적 과제다. 일본은 평화헌법에서 사실상 벗어나 재무장과 군비 강화로 나아가면서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의 중심 역할을 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첨단기술을 비롯한 군사, 경제분야에서 매우 구체적인 이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

한국이 제대로 전략을 세우고 협상하지 못한다면 자칫 중국과의 관계만 더욱 악화시키면서 실익은 없는 상황으로 몰릴 우려가 크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자유 가치 동맹의 일원’이라는 립서비스 외에,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전략, 경제적 이익을 구체적으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 속에서 호주는 오커스에 참여해 핵 잠수함을 확보했고, 일본은 미국과 무기 공동 개발을 비롯해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물리학, 핵융합, 우주까지 미래 핵심 산업에서 중요한 이익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은 공군이 보유한 F-35 전투기를 일본의 주일미군 기지에 보내 정비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한국의 접근은 일본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식의 외교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위동맹으로 고착화되면서, 중국과의 갈등만 커지고 미래 핵심 산업에서 일본에 비해 크게 불리해지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세계적으로 정세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새 동맹구조를 되돌릴 수도 없고 이탈할 수도 없다”면서도 “한국이 이 변화 속에서 분명한 목표와 전략을 세워 한국의 의제를 해결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원칙과 현실에 맞게 새로운 구조에 동참하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을 향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관리하는 공간을 만드는 종합적 외교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이 과거사 반성을 지우고 재무장의 길로 나아가고 미국이 이를 적극 추진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한국은 더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에서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은 커녕 관련 내용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이 일본에 대해 과거사 반성을 계속 촉구해오다 지난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이런 요구가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3일에도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군사 동맹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미일동맹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면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강조하는 것에 주목한다”며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사라진 데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반성 요구를 접자, 일본 외교에서는 오히려 한국의 입자가 축소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신한일 선언’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는 별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반성 요구를 포기한 상황에서 한국에 대해 외교력을 크게 쏟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일본 정부 내에서 굳어지고 있다. 한국이 활용할 외교 카드도 사라지고 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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