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가 재점화한 ‘사과 수입’ 논쟁···“현실적 대안” “생산 기반 무너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재점화한 ‘사과 수입’ 논쟁이 뜨껍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물가 상승을 통화·재정정책으로 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론과, 농업은 필수 공공재나 다름없는 만큼 생산기반이 붕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농업 보호론이 부딪히고 있다.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기후·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이 재배면적 더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해결될까”라며 “불편한 진실인데 물가 수준, 특히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그때그때 지원금을 주는)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생산 감소와 고물가 문제를 재정 지원으로 대응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사과·배 수입을 금지하는 지금의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농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해외 수입으로 대응하면, 국내 생산기반이 부실해져 생산량이 감소하고 결국 소비자 가격만 다시 끌어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14일 “윤석열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마늘과 양파, 대파 등에 대해 무관세 또는 저율관세할당(TRQ) 등과 같은 수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고물가에 대응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다”며 “당장 눈앞의 숫자만 보는 근시안적인 물가정책은 악순환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입 위험분석 절차를 마치기 전에는 수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래 병해충 유입과 같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 위험분석 절차는 수출국 요청 접수부터 수입 허용기준 고시·발효까지 모두 8단계로 이뤄진다. 기존에 수입이 허용된 품목 76건의 경우 8단계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8년1개월이다. 한국에 사과 수출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나라는 일본 등 11개국이다. 이 중 일본이 5단계(위험관리방안 작성)까지 진행 중이지만, 병해충 위험관리에 문제가 있어 2015년부터 사실상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종합적으로 보면 수입을 해서라도 사과값을 안정화시키자는 여론이 높지만, 정부 의지만으로 수입 문턱을 낮추기는 힘든 여건이다. 농식품부는 “외래 병해충 유입 시 생산량 감소, 타 작물로의 피해 확산, 방제 비용 증가 등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며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5년 발생한 과수화상병(과일나무의 잎과 줄기가 화상을 입은 듯 말라 죽는 병)이 국내 외래 병해충 유입의 대표 사례다. 당시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사과 묘목을 통해 과수화상병이 보고된 후 현재까지 34개 시·군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손실 보상액은 247억원, 방제 비용은 365억원이 소요됐다.
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효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내년에 본사업으로 추진 예정인 (저소득 취약계층에 매월 일정액의 바우처 카드를 지급하는) 농식품바우처 등을 통해 저소득계층을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공공비축 물량과 계약재배 물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식량과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4121220001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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