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테이 서점마을을 준비하는 사람들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4. 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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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벚꽃처럼 봄은 화사하지만, 때론 길들지 않은 들고양이처럼 우리를 할퀴고 가끔 초조하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북스테이 서점마을'의 문을 열겠다는 포부를 안고 괴산을 찾은 것이다.

십여 년 전, 마을 전체가 수 십 개의 서점과 예술 공방과 카페와 민박으로 가득하던 유럽의 책마을에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찬탄.

독서인구 감소와 문화 정책의 후퇴라는 철퇴를 맞고 휘청거리는 옛사람을 등에 업고 새로운 꿈을 꾸는 서점마을 여섯 가구가 이 시대 진격의 거인이 되어준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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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 서점마을’을 준비하는 사람들. 필자 제공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만개한 벚꽃처럼 봄은 화사하지만, 때론 길들지 않은 들고양이처럼 우리를 할퀴고 가끔 초조하게 한다. 천기와 일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던 과거와 달리 꽃은 순서를 어기며 제각기 피고, 여름처럼 덥다가도 급작스레 냉해가 들어 어린 모종의 성장을 짓밟기도 한다. 계절의 순환은 정해진 법칙이니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만다는 걸 알면서도 싹을 틔우지 못한 씨앗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초조하다.

​ 십 년 전, 시골 책방이 처음 문을 열었던 그해 봄도 그러했다. 초보 농부의 머뭇거림은 파종하기 좋은 날을 맞추기 어려웠고 서툴게 심은 옥수수며 고구마 모종이 과연 남의 밭처럼 잘 자라 결실을 맺을까 확신하지 못했다. 한 손으로는 호미질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책꽂이를 만들었다. 서가에 꽂을 새 책들을 사들이며 귀촌 부부의 꿈에 냉해가 들지는 않을까 초조하던 봄. 다행히도 계절은 멈추지 않고 달려와 책방을 둘러싼 돌담길에 흰 철쭉꽃이 절정을 이루던 4월의 마지막 날, 시골 마을에 뿌린 작은 책방 씨앗은 곱게 싹이 텄다.

십 년이 갔다.

울던 아가는 의젓한 어린이가 되고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 그간 세상도 변하고 사회적으로 여러 번 격변의 시기가 있었고, 때론 희망이 때론 절망이 우리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독서문화 생태계의 영역에도 부침과 변화가 뚜렷했다. 종이책이 쉽게 몰락하지는 않겠으나 하락의 징후는 너무나 뚜렷하고 온라인 미디어 환경과 시장의 변화는 전통적인 공간 문화 사업인 '동네 책방'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과 생각하는 시민의 힘이 모여 진한 향기를 머금은 희망의 꽃이 피기를 꿈꾸며 동네 책방을 지키고 있지만 과연 책 속에 길이 있고 책은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여전히 묻고만 있는 십년 차 책방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국내 처음으로 ‘북스테이 서점마을’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을 모은 여섯 가구 귀촌 모임이다. 필자 제공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점 마을”이라는 걸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을 모은 여섯 가구 귀촌 모임이다. 전북 고창에 함께 땅을 마련한 이들은 인생 후반기를 책이 있는 집에서 읽고 쓰고 책과 하룻밤 잠자리를 팔며 더불어 즐겁게 살아 보겠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상하고 희한한 책’만 모여있는 서점을, 직업이 나무 의사인 이는 식물 서점을, 이 모임을 주도하고 꾸린 나의 선배는 인문 철학 서점을 만들겠다고 한다. 살롱처럼 한 잔의 차와 술을 마시며 세월을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할 테고, 모두의 집에는 하룻밤 깃들 수 있는 방도 들일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북스테이 서점마을’의 문을 열겠다는 포부를 안고 괴산을 찾은 것이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공동체,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얼굴엔 웬만한 풍파쯤은 거뜬히 이겨 넘길 만큼 여유가 묻어 있다. 누군가는 ‘목련이 필 때쯤’ 도시 하나를 서울시에 편입시키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했고 경기도는 서울을 향해, 지방 도시는 수도권을 향해 욕망의 도로를 닦느라 정신없는 시대. 여전히 누추한 시골 마을로 향하는 다리를 놓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국내 처음으로 ‘북스테이 서점마을’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을 모은 여섯 가구 귀촌 모임이다. 필자 제공

북스테이 책방의 원조이자 책방지기 십년차를 살고 있는 선배에게 덕담을 청하러 온 그들에게, 그러나 나는 선뜻 희망의 언어를 내어주지 못했다. 십여 년 전, 마을 전체가 수 십 개의 서점과 예술 공방과 카페와 민박으로 가득하던 유럽의 책마을에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찬탄. 우리에게도 이렇게 품격있는 농촌 마을이, 우아한 삶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던 마음은 지금 어디로 갔나. 독서인구 감소와 문화 정책의 후퇴라는 철퇴를 맞고 휘청거리는 옛사람을 등에 업고 새로운 꿈을 꾸는 서점마을 여섯 가구가 이 시대 진격의 거인이 되어준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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