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공급망 대응과 '밤양갱'

2024. 4. 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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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지난 1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이 통과돼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과 함께 '공급망 3법'으로 지칭되는 공급망 안정화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도 틀이 완성됐다. 세계 경제 및 통상질서 개편과 더불어 국내 제조업의 공급망 안정화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인 대책을 수립한 것이다.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높거나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에 대해 생산 기업의 기술개발, 인수합병, 규제특례를 적용해 공급망 이슈 발생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이 실행될 전망이다.

더불어 지난 3월 유럽연합(EU) 상주대표회의는 EU 공급망실사지침(CSDDD)을 승인했다. 이달 중 예정된 EU의회 본회의 승인을 거쳐 지침이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EU 역내에서 생산·판매활동을 하는 (대)기업은 공급망 전체에 걸쳐 인권과 환경에 대한 실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한다. 앞서 2022년 미국은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시행해 중국 신장지역 내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된 제품·원료의 미국 내 수입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여러 국제 분쟁에 따른 시장 위축과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었고 원자재 가격상승, 고금리 등으로 사업환경이 매우 불리해지고 있다. 정부도 공급망 3법을 제정해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부자재를 만드는데 인권 침해나 환경오염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데이터를 관리해 외국 관청에 보고하거나 공시하도록 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관련 규제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ESG 관련 국제표준이나 산업별 표준, 국내외 각종 ESG평가기관의 지표를 정리해보면 항목이 1000개가 넘는다. 우리 기업들이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여기저기에서 원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원망을 하는 것도 이해된다.

대기업들은 외부 컨설팅도 받고 내부 인원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내부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은 ESG 규제를 충족하거나 고객사의 ESG 실사에 대응하는 것을 점점 더 버거워하고 있다. ESG의 범위와 내용이 워낙 광범위하고 용어조차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ESG와 관련 기업 내부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없으면 자료를 만든 이후에 그 자료를 보관·관리하는 것 자체가 매우 난이도가 높다. 정부에 여러 경로를 통해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고, 고객사에 교육훈련 등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동안 대기업의 협력사 관리 방식은 1차로 협력사에 '어마어마한' ESG 체크리스트 및 자료 목록을 요구하고, 2차로 협력사에 대한 부분적인 교육을 수행한 후 답변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법보다 대기업에서 공급망, 즉 협력사의 ESG 현황 파악과 개선을 위한 내부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음원차트 1위를 싹쓸이한 비비의 '밤양갱' 가사처럼, 협력사 입장에서 대기업에 “너는 원하는 것이 너무나 많아”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밤양갱' 가사처럼 ESG항목 우선순위를 제시해야 한다. 요구사항이 하나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수백가지 요구를 하는 것보다는 핵심 과제를 선정하고 우선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과 지도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EU의 CSDDD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포괄적인 인권·환경과 같은 내용으로 공급망 ESG 관리를 하기보다는 미국의 UFLPA 같이 특정 지역(신장지역), 특정 품목(면화, 폴리실리콘, 토마토)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데이터 관리나 단계적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공급망 ESG는 국제정치적 갈등이 높아지고 국제통상질서가 개편되고 있는 시대에 가치를 중심으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주요 수단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나라 기업, 특히 중견·중소기업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대기업 또한 보다 세심한 상생 전략을 마련해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길 바란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yongjin.park@kispric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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