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스라엘 척진 세월 45년…‘그림자 전쟁’이 열전으로
팔레스타인 두고 적대관계 싹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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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이스라엘은 지난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서로를 은밀하게 비공식적으로 공격하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 혹은 ‘대리세력 전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란이 13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최초의 일로, 40년 넘는 양국 그림자 전쟁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사태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성립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서방 식민주의의 대리인으로 보는 당시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견해에 따라 이스라엘과 단교했다. 다만 양국은 1980년대에는 직접 적대 행위를 벌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최대 주적은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어서,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던 이란을 배후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양국의 적대관계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현재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기원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당시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을 방문한 첫 해외 지도자가 되는 등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적극 지원했다. 이스라엘은 당시 레바논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제거하려고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는 레바논 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의 침공은 레바논 남부 시아파 무슬림들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란은 이스라엘 침공에 맞서는 같은 시아파인 헤즈볼라를 적극 지원했고, 이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리세력 전쟁’, 혹은 ‘그림자 전쟁’의 기원이 됐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결은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몰락한 뒤부터 본격화됐다. 이란은 자신들의 주적이기도 했던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중동에서 세력공백이 생기자,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레바논 헤즈볼라-팔레스타인 하마스-이라크의 시아파 정부 등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가 영향력을 확장했다.
급기야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를 뿌리뽑으려고 레바논 전쟁을 다시 일으켰으나, 국제적 비난을 받고 철수해야만 했다. 이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더욱 힘을 키우고 이란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자, 이스라엘은 이란 및 헤즈볼라 등 시아파 연대 세력들을 최대 안보위협 세력으로 설정하고 이들을 공격하는 ‘그림자 전쟁’을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2010년대 들어서 이란의 핵개발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란 영토 안과 밖에서 핵개발 과학자 암살, 핵시설 사보타주, 군시설 타격 등을 시작했다. 2010~12년에 이란 핵개발 과학자 5명 암살, 2010년 스턱스넷 바이러스로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농축시설 불능화, 2010년 이란 호람바드 혁명수비대 기지 등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공격을 자신이 했다고 스스로 밝히지는 않아왔다.
또 2010년 이후 이라크 및 시리아에서 내전으로 친이란 무장세력들이 성장하자, 이들 세력 및 이들을 지원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을 겨냥한 직접적인 공습과 폭격도 강화했다. 2020년 1월3일 이라크 바그다드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것도 이스라엘이 배후에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이런 그림자 전쟁에 직접적인 대응은 피해 왔다. 대신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헤즈볼라, 하마스 등을 지원해왔다. 이스라엘이 이란 및 친이란 세력을 타격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릴수록 이란 대리세력과의 교전 확대 및 비대칭적 전쟁에 항시적으로 빠지는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번 가자 전쟁도 크게 보면 이란과의 대리세력 전쟁 일환이다. 하마스에 더해 헤즈볼라 및 시리아·이라크 내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고, 예멘의 후티반군까지 가세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들을 지원한다고 보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겨냥해, 지난 12월25일 이후 시리아를 3차례나 공습해, 이란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을 암살했다. 급기야 이스라엘은 지난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 2명을 숨지게 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하던 이란도 이 사건은 묵과할 수 없어 예상을 뛰어넘는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라는 강수를 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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