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무생이어서 넘어갔지만, 이 밑바닥 빌런도 납득이 필요하다('하이드')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1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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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끝없는 반전의 묘미가 남긴 개연성의 아쉬움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동안 네가 원하는 거 다 해 줬잖아. 좋은 아빠로서 좋은 남편으로서 황태수건 바람이건 네가 들쑤시지만 않았어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문영아. 닥치고 가만히 있어." JTBC X 쿠팡플레이 토일드라마 <하이드>에서 차성재(이무생)가 나문영(이보영)에게 뻔뻔한 모습을 보일 때 문득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떠올린 시청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쳤던 그 뻔뻔한 모습이 이른바 '사빠죄아'라고 불리며 유행어가 됐던 것처럼, 차성재의 이런 적반하장은 시청자들이 뒷못을 잡게 만들었을 게다.

워낙 연기를 찰떡같이 하는 이무생인지라, 저도 모르게 몰입되게 만들고 있지만, 매회 계속 새로운 얼굴을 들이미는 차성재라는 캐릭터는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어딘가 정서적인 이질감 같은 걸 주는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자상해 보였던 아빠이자 남편으로 등장했지만, 자살을 위장해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고, 그것도 모자라 꽤 오래도록 하연주(이청아)와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처럼 믿어왔던 남편과 가족들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은 <하이드>라는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는 듯한 반전의 묘미와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빌런의 모습이 등장하는 실체 때문일까. <하이드>의 차성재라는 캐릭터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반전을 위해 더 강력한 빌런의 모습을 꺼내놓는 듯한 인물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드러낸 이 인물의 마지막 욕망은 결국 돈이다. 그는 내연녀 하연주와 함께 금신물산이 시작하려는 리조트 사업을 위한 은행 대출금 800억 원을 빼돌리려 한다.

800억. 욕망을 건드리는 액수지만, 차성재가 그 욕망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그 과정들은 어딘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내 나문영을 꽤나 위해주는 것처럼 변명을 해대던 모습들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해도, 딸 봄이(조은솔)에게 외국에 함께 가자고 했던 말까지 거짓은 아닐게다. 그런데 결국 이 인물은 돈을 빼돌리고 해외로 도주하려다 이 사실을 미리 알게 된 나문영의 신고로 백민엽(김상호) 형사의 추격을 당한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나문영이 언론에 폭로함으로써 봄이를 친구들이 멀리 하려 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차성재는 그것이 마치 덮으려 했던 진실을 들쑤신 나문영의 탓인 양 몰아세운다. "네가 아빠 자격이나 있는지 먼저 생각하라"는 나문영의 말처럼, 차성재의 말이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 있다. 살인에 신분 세탁에 불륜까지 저지른 인물이 아빠 자격 운운하며 딸 앞에 나타나 자상한 아빠처럼 구는 그런 인물이 가능할까.

이처럼 차성재라는 인물이 잘 공감되지 않는 건 어쩌면 원작드라마가 갖고 있는 영국의 정서와 리메이크작으로서의 우리네 정서가 어딘가 잘 맞지 않아서 생겨난 결과일 수 있다. 보다 개인주의적인 저들의 정서라면 이런 인물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정서라면 돈 때문에 가족까지 버리는 인물이란 거의 끝까지 간 막장 캐릭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적 괴리감이 차성재가 하는 가족을 버리고 저지른 일련의 행위들이 잘 공감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이건 <하이드>라는 리메이크 드라마가 가진 태생적 한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이드>는 결국 숨겨졌던 진실이 하나씩 그 껍질을 벗겨내는 반전 스릴러의 묘미를 가진 드라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차성재 캐릭터가 필요하고, 그것이 실체와 거리가 멀수록 충격은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펌 대표로서 제아무리 궁지에 몰렸다 해도 든든하고 명망높은 변호사로서의 아버지도 있던 그가 이렇게 가족까지 다 버릴 정도로 밑바닥 빌런이었다는 그 실체는 어딘가 쉽게 납득이 어렵다.

물론 이건 현재까지의 이야기다. 남은 회차들이 이 개연성의 의구심들을 지워버릴 만큼 충분히 납득되는 '진실'을 꺼내 보여준다면 다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개연성이 쉽지 않은 이 캐릭터를 이토록 몰입감 있게 끌고 온 이무생의 연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남은 후반부에 그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길 바란다. 그저 밑바닥 빌런이었다는 그런 결과가 아니길.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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