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었다'·'원더랜드'…팬데믹 때 아껴둔 영화 빛 보나
"트렌드 뒤처지고 올드함 느낄 수도…더 늦기 전 털어내야"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몇 년간 쉽사리 개봉 시기를 정하지 못했던 영화들이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제작 단계부터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오랜 시간을 묵히는 바람에 이른바 '창고 영화'로도 불리게 된 작품들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포문을 여는 영화는 다음 달 개봉하는 김세휘 감독의 스릴러 영화 '그녀가 죽었다'다.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정태(변요한 분)가 자신이 관찰하던 인플루언서 소라(신혜선)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 위해 벌이는 분투를 그렸다.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는 변요한과 심혜선이 주연으로 나서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2021년 상반기 촬영을 마치고 3년이 흐른 뒤에야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
비슷한 시기 크랭크업한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오는 6월 극장에 걸린다.
김 감독이 '만추'(2011) 이후 13년 만에 내놓는 신작인 이 영화는 세상을 떠난 가족을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박보검, 수지, 최우식, 정유미, 탕웨이, 공유 등 화려한 출연진을 내세워 이목을 끌었다. 활동 기간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내놓지 않던 김 감독의 새 영화라 기대감은 더 컸다.
하지만 촬영을 마친 박보검이 입대하고 전역까지 한 다음에도 개봉 소식이 없어 팬들의 애를 태웠다.
두 작품이 수년간 개봉일을 잡지 못한 이유는 2020년 2월 코로나19 발생을 기점으로 극장과 한국 영화계가 최악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수백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마저도 고배를 마시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엔데믹 이후인 지난해마저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 평균 연간 관객 수의 절반가량에 머물렀다.
그러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매출액과 관객 수가 각각 팬데믹 이전의 77.5%, 66.0%까지 회복됐다. 개봉 시점을 고심하던 작품들로서는 현재 영화 시장이 이전보다는 기대해볼 만한 상황인 셈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파묘'의 흥행 덕분이긴 하지만, 최근 한국 영화와 극장가의 분위기가 좋다"며 "이런 흐름을 봤을 때 지금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점이라 판단하고 개봉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을 끝내고도 몇 년을 묵힌 영화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다. 시간이 없는 탈옥수 203(최민식)과 돈이 없는 환자 남식(박해일)이 우연히 거액의 돈을 얻고, 인생의 화려한 마무리를 꿈꾸며 동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로드무비다.
2019년 10월 크랭크업한 이 영화는 이듬해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에 선정됐으며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당초 2020년 개봉이 점쳐졌으나 아직 개봉 시기는 미정인 상태다.
이 밖에도 김윤석·배두나 주연의 '바이러스'(강이관 감독), 이병헌·유아인 주연의 스포츠 드라마 '승부'(김형주), 류승룡·하지원 주연의 가족 누아르 '비광'(이지원), 곽도원 주연의 '소방관'(곽경택) 등 굵직한 상업영화 수십편이 몇 년째 구체적인 개봉 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올드한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개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특히 현대극의 경우, 크랭크업 1년만 지나도 요즘 감각에서 살짝 뒤떨어졌다는 것을 관객들은 눈치챈다"며 "의상이나 소품만 봐도 이미 유행이 끝난 것들이고, 영화 속 메시지도 '다 지나간 얘기'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역시 "관객들은 '오랫동안 못 나온 영화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올해 안에는 개봉해야 이미지가 나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짚었다.
사업적 측면에서도 더 늦기 전에 '창고 영화'를 털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배급사마다 개봉을 안 한 작품이 몇 개씩은 있다"며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극장 개봉이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직행이든 발 빠르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고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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