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예산 줄어도 학생연구원 늘어난 출연연 속사정
정부의 이례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도 올해 주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학생 연구원 규모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현실적으로 감축하기 어려운 인력 대신 재료비와 같은 장비 비용에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부족한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른 비용을 줄이게 되면서 실험의 양적,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2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2024년 정부 R&D 예산이 확정된 2023년 말 기준 출연연 연수직 인원은 전년 말보다 10%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2022년 말 1471명이었던 박사후연구원은 1600여명으로, 3635명이었던 학생연구원은 4000여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가늠됐다.
출연연 중 학생연수직 규모가 가장 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인원이 늘었다. 2024년 3월 기준 학생연구직은 1177명으로 전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84명이 많다. KIST의 2024년 주요사업비 예산은 1047억 6100만원으로 2023년 주요사업비 예산 1335억3700만원보다 약 22% 감소했다. 인건비 예산은 줄었지만 인력 규모는 증가한 것이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예산이 축소됐다는 사정으로 연구 인력을 줄일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과학기술원 소속 한 교수는 “자금난을 겪으면 구조조정을 하는 회사와는 달리 연구실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었다고 해서 당장 근무하는 인력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지원자 규모를 축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젊은 연구자들에게 연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인력 부분은 건드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건비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른 비용을 아끼고 있다. 당장 줄일 수 있는 것은 재료비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같은 미봉책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걱정했다. 서울대 한 교수는 “장비의 사용 횟수, 세포배양 실험 횟수, 효소 샘플 소비 횟수 등 실험에 필요한 모든 재료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료비가 빠듯해지면서 데이터를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실험 실패에 더욱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선 실험의 실패율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이같은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연구환경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재료비를 깎아도 빠듯한 살림에 연구자들은 다양한 자금원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풀링제)를 활용하고 산업계 수탁과제나 공공 용역과제 수주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국립대 공대 교수는 “풀링제의 경우 다른 연구책임자가 확보한 자금을 나눠준다는 측면에서 연구자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과제 수를 늘려 연구비를 수혈하는 것에 대해서도 “연구과제는 5개, 연구책임자로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3개까지 허용하는 ‘3책5공’ 제한 등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젊은 연구자 감원을 비롯한 정부 R&D 예산삭감의 부작용이 이미 연구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대 소속 한 교수는 “학생연수직이나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을 줄이진 못했지만 일부 연구실에선 실험에 필요한 기술자 인력을 이미 줄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학생연구원을 계약할 때는 시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기존보다 계약 시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보전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연구계는 정부가 공언한 내년 R&D 예산 증액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달 초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은 “내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자 한다"며 "일각에서 말하는 '복원'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류광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또한 지난달 간담회에서 "2025년 R&D 예산은 올해보다 납득할 수 있는 규모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모든 부분에서 예산을 확대한다는 것은 아니며 문제가 있거나 비효율이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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