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억 들인 출구조사 왜 틀렸나…"침묵했던 '샤이 보수'"[팩트프레소]

서상혁 기자 2024. 4.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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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혁의 팩트프레소]당선자 예측 18곳 빗나간 22대 총선 출구조사
대선·시도지사 선거보다 모수 작고 표본 대표성 떨어져 예측 어려워

[편집자주]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정보 중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더 자주 공급하는 것이죠. 뉴스1은 '팩트프레소' 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떠도는 각종 이슈와 논란 중 '사실'만을 에스프레소처럼 고농축으로 추출해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아그린아파트 체력단련실에 마련된 이촌 제2동 제3투표소에서 방송사 출구조사원들이 투표를 마친 유권자를 대상으로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2024.4.1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지난 4월 10일 오후 6시 5분쯤, 지상파 3사는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직후 '범여권 200석 안팎 압승'이라는 속보가 쏟아졌습니다. 개표 결과 범여권 192석. '압승'이긴 했지만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격전지를 중심으로 출구조사 예측이 빗나간 선거구는 18곳에 달했습니다. 일례로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가 동작을 선거 출구조사에서 류삼영 후보에 4.7%포인트(p) 뒤졌지만 개표 결과 8%포인트(p) 차로 승리했습니다.

이번 출구조사에는 72억 원이나 투입됐다는데 왜 맞히지 못한 걸까요? '역대 총선 최고의 사전투표율'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실제로 사전투표율이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팩트프레소> 확인 결과, '사전투표' 때문만이 아니었고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대선 땐 맞고 총선 땐 왜 틀렸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진행되는 출구조사는 '선거 모니터링'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총선에선 출구조사원들이 바삐 움직였을 것입니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전체 유권자의 31.28%인 1384만 9043명)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전투표자는 출구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사전투표는 본 투표 날 선거인을 끌어오는 '분산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사전투표율이 높아질수록 '깜깜이' 데이터가 늘어나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방송사들은 이를 보정하기 위해 사전투표 직후 격전지 선거인 5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진행했으나 결과적으로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사전투표율만을 콕 집어 '주범'이라고 하기엔 다소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사전투표율은 36.93%였습니다. 이번 총선과 비교해 무려 5.65%포인트(p)나 높았죠. 그럼에도 방송 3사의 출구조사는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맞췄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출구조사 득표율과 실제 득표율 차이는 0.16%p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총선과 마찬가지로 전화 조사를 통한 보정작업도 했습니다. 물론 당선자도 맞췄습니다.

그때는 맞고 이번엔 왜 틀렸을까요?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표본과 모집단 측면에서 총선 출구조사가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합니다.

출구조사에서 선거구의 선거인은 '모집단'입니다. 표본집단은 출구조사에 응했던 이들입니다. 모집단이 클수록 표본이 들쭉날쭉해도 영향을 덜 받습니다. 쉽게 말해 모집단이 클수록 조사의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은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 4400만여 명입니다. 모 투표소에서 갑자기 튀는 데이터가 나온다 한들,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반면 국회의원 선거는 전국 254개 선거구를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선거구마다 선거인의 수에는 차이가 있는데, 12만~24만 명 수준입니다. 이 경우엔 개별 투표소에서 튀는 데이터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대선과 시도지사의 선거보다 상대적으로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표본의 대표성도 대선이나 시도지사 선거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출구조사는 5명이 지나갈 때마다 1명을 붙잡는 체계적 추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거부하는 선거인이 분명 있을 테지만, '5명당 1명'이 원칙인 탓에 실적 목표치를 두긴 어렵습니다.

표본의 대표성은 표본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대선이나 시도지사 선거의 경우 선거구가 큰 만큼, 여러 곳에서 표본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총선은 선거구가 작은 탓에 많은 표본을 뽑아내기 어렵죠.

이 때문에 대선이나 시도지사 선거에서는 출구조사가 빗나간 사례를 손에 꼽습니다. 반면 총선은 올해 18개 선거구, 지난 2020년 14개 선거구, 2016년에는 17개 선거구에서 결과가 뒤바뀌며 상대적으로 낮은 적중률을 보였습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은 "총선 선거구가 254개나 되다 보니 모든 상황을 물리적으로 통제하기 어렵긴 하다"라며 "사전투표도 분명 영향을 미쳤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출구조사가 갖는 구조적 한계가 더 큰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출구조사 '무응답' 시민의 표심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

총선 출구조사의 응답률은 8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명 중 1명은 '무응답'으로 제출한다는 의미죠. 종종 이들 '무응답' 층의 표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여론조사 업계에선 "편파가 발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숨은 표심들이 일방적으로 쏠리는 경우가 있는데,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총선이 딱 그랬습니다. 출구조사가 빗나간 선거구 18곳 중 16곳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실제 결과는 국민의힘 후보였습니다. 지난 2016년 총선 때는 14개 지역구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틀렸는데 그중 11곳이 미래통합당으로 예측됐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실마리는 '판세'입니다. '정권심판론' 같이 선거판을 관통하는 대세 여론이 있을 경우, 여권의 지지자들은 여당에 표를 주고도 응답하지 않거나 "야당을 찍었다"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죠.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층이 스스로 열세에 있다고 판단해 의사를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소위 '샤이 보수'들이 출구조사에서 무응답하고 가버린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습니다.

관심도가 높은 선거구에서 결과가 뒤집히다 보니 주목을 받은 것이지, 사실 총선 출구조사 적중률이 절대적으로 낮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구조적 문제 때문에 틀리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을 납득하기는 힘듭니다. "틀릴 게 뻔하면 조사는 왜 하나"라는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영방송이 출구조사에 들이는 비용은 시청자들의 수신료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 총선 때는 이번 출구조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보완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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