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표” “피눈물” 韓의 갑작스런 4월 절규… 총선 결과, 與도 알고 있었다
민생투어·대파논란·의료담화 거치며 하락
80석→140석→100석 거치며 결국엔 읍소까지
“제가 이렇게 사라지게 두실 겁니까”(4월1일)
“우리가 죽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죽습니다”(4월2일)
4월 들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메시지가 절박하고 격해지기 시작했다.
작년말 ‘80~90석 전망’이란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위원장을 맡으면서도 “승리”를 거듭 강조하고 3월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던 여유가, 3말4초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것이다. 총선 하루 전 마지막 유세에선 “저는 억울하다” “피눈물이 난다” “정말 딱 한 표가 부족하다”는 절규가 나왔다. 그리고 결과는 총선 참패였다.
마치 결과를 알고 있는 듯한 과거 한 위원장의 4월 태도 변화 배경에,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수시 시행한 ‘예상 의석 수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작년 12월 한 위원장이 취임할 무렵 국민의힘에서 공유되던 총선 예상 의석 수는 80~90석이었다. ‘서울 49석 중 우세 6석’ 자체 판세 분석 보고서<<b>조선일보 12월8일자 단독보도>에다, ‘부산에서도 과반이 쉽지 않다’는 전망 등을 종합한 추정치였다고 한다.
이준석 전 대표가 “제가 전권을 맡게 된다면 저는 한 110석, 120석 할 자신있다”고 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10석이면 선방일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단 의미였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승리’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12월26일 불출마 선언에서도 “승리를 위해서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 “승리를 위해서 뭐든 하겠지만, 제가 그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해가 바뀌자 첫 위기가 닥쳐왔다. 1월17일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깜짝 발표하자, 대통령실에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그날 저녁 김 비대위원은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프랑스 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며 폭발했다”고 했다. 이튿날엔 한 위원장이 명품백 논란에 대해 “국민이 걱정하실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갈등이 시작됐고, 이후 수일간 한 위원장과 대통령 측 인사 간 회동 등을 거치면서 갈등은 계속 증폭됐다. 21일 “대통령이 (한 위원장 사퇴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 30분만에, 한 위원장이 사퇴 거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이튿날엔 사태를 촉발한 김 비대위원이 “저는 변한 것 없다”고 말하면서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극한 대치는 22일 밤 충남 서천 시장 화재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23일 아침 한 위원장이 화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출발했고, 이를 보고받은 대통령실이 곧바로 같은 장소로 향하면서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양쪽이 일정을 맞췄고, 한 위원장은 현장에서 40분 먼저 도착해 윤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후 국민의힘은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며 지지율을 쌓았다. 한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가 몰렸다. 당이 자체 조사한 예상 의석 수가 1월말 100석을 넘어섰고, 2월 하순엔 130석을 넘어섰다.
2월25일 대통령실 참모 출신 출마자인 장성민 후보가 ‘160석’을 거론했다. 방송에 출연해 “민주당이 영부인 특검 놀이를 간다? 그러면 총선은 제가 봤을 때 민주당이 110석 그 상한선에서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국민의힘은 150석에서 160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이 기사로 나온지 1시간만에 한 위원장 명의 ‘입단속 공지’가 내려졌다. “국민의힘은 아직 국민들의 사랑과 선택을 받기에 많이 부족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총선 예상 의석수를 과장되게 말하는 등 근거없는 전망을 삼가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야당이 ‘정권 심판’을 들고 나온 상황에서 ‘대통령 윤석열 대(對) 이재명’의 총선 구도가 ‘정치 신인 한동훈 대 이재명’으로 바뀐 것은 호재였다. 한 위원장은 2월 뉴시스, 3월 연합뉴스·연합뉴스TV 공동 조사 등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오차범위 내에서 1·2위를 한번씩 주고받으며 다퉜다. 3월 첫주엔 예상 의석 수가 ‘140′을 넘어서면서, 과반이 눈앞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가 정점이었다. 대형 악재가 줄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3월 10일, 해병대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됐다. 이 전 대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출국금지조치가 돼 있었지만 법무부에 이의를 제기해 출국금지조치를 풀었고, 호주로 부임했다.
14일엔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이 터졌다. 함께 식사하던 MBC 기자를 콕 짚어 “MBC는 잘 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이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던 오홍근 기자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불통’과 ‘고압’이란 키워드의 그늘이 다시 국민의힘을 뒤덮기 시작했다. 서울시민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단 1주일만에 15%포인트가 빠졌다. 한 위원장은 같은달 17일 대통령실에 두 사람의 거취 결단을 공개요구했지만, 즉답은 없었다.
황 전 수석은 20일 뒤늦게 사퇴했고, 이어 이 전 대사가 귀국, 29일에야 사임했다.
그런 와중에 이번엔 ‘윤 대통령 대파값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대화 전체를 들어보면 대통령의 물가 인식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MBC가 이틀전 뉴스였던 대통령 동정 리포트 영상의 단 한대목만 잘라와 ‘대통령이 물가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인터넷에 올렸다. 이 영상은 야권에 대형 호재가 됐다. 야당 유세장마다 ‘대파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KTV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부랴부랴 당시 상황 전체를 담은 ‘가짜뉴스 대응 영상’을 만들어 올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거기에 당에서도 기름을 끼얹었는 실책이 나왔다.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는 대파값 발언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윤 대통령이 말한 가격은 대파 한뿌리 가격”이란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화를 돋웠다.
야권의 ‘대파 공세’는 선거날까지 이어졌다. 야권 지지자들은 투표소에까지 대파를 들고 갔다.
정부의 과도한 ‘민생투어’도 이번 선거 참패 요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24차례 주재했다. 여기에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상속·증여세 완화’ 등 총 240개의 정책과제를 쏟아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제시한 정책과제가 여당이 준비한 선거 공약 효과를 희석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민생토론회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민생토론회 개최 장소가 총선 접전지에서 집중적으로 개최된 점, 윤 대통령이 개최지에 따라 ‘맞춤 개발사업 계획’을 발표한 점, 이해관계자별 지원책이 발표된 점 등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고 지적하며 선관위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신고서를 제출했다.
4월1일엔 윤 대통령이 당의 만류에도 의료 개혁 관련 TV담화를 통해 국민 앞에서 51분간 연설했다.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고 말했다. 증원 규모에 대한 조건부협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야권에선 “왜 2000명에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비판이 나왔고, 의사 커뮤니티에선 “꽉 막혔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담화 직후 한 위원장이 2000명 증원에 대해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고 수습해보려 했지만, 대통령 발언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 불만 여론을 틈타 친야 유튜버들은 ‘2000′이란 숫자를 무속과 관련짓는 선동 영상으로 조회수를 끌어모았다. 각 채널에서만 수십만명이 그런 영상을 봤고, 캡처를 통한 2차 가공 콘텐츠도 확산했다.
이무렵 당에서 분석한 예상 의석 수는 100석 안팎으로 내려갔다. 이제 목표는 ‘과반’은 언감생심, 한 위원장 입에선 “개헌 저지선을 사수해달라” “나라가 망한다”는 읍소가 나왔다.
최종 선거 결과는 108석. 선거 다음날 새벽부터 대통령실에선 “한동훈 탓”이란 목소리가 나왔고, 당에선 “대통령 탓”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날 사퇴 회견에서 ‘총선 결과가 대통령실ㆍ여당의 공동 책임인가’라는 질문에 “제 책임”이라고 답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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