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그알' 해외입양인 점 문신 미스터리…동일한 문신이 새겨진 입양인, 그 의미는?

김효정 2024. 4. 1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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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입양인들의 팔에 새겨진 문신의 의미는?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루스윤희와 열한 개의 표식 - 해외입양인 점 문신 미스터리'라는 부제로 해외입양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1969년 12월 한국에서 태어난 박윤희, 그는 태어난 지 약 1년 6개월 뒤 1971년 5월 유럽으로 입양되었다. 그렇게 루스 폰 덴 버르라는 이름까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

양부모의 사랑 속에 성장한 그는 네덜란드 현지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남편이 그의 팔에 있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저 평범한 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루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사라 존스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고.

사라 존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팔에 있던 십자가와 네 개의 점 문신에 의혹을 가지며 이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42년 만에 가족들을 찾게 되었던 것.

사라의 문신은 친부가 자녀들과 헤어지기 전 다시 찾을 생각을 하며 새겨 넣은 것이었다. 이를 본 루스 씨는 자신의 팔의 점도 사라 존스의 문신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했다.

피부과 의사는 루스 씨의 팔에 있는 점이 점이 아닌 문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양부모들은 루스 씨의 팔에 문신을 새긴 적이 없기 때문에 루스 씨는 더욱 희망을 품었다.

결국 SNS에 문신 영상을 올린 루스 씨.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영상을 본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등에서 해외입양인 20여 명이 자신들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다며 연락을 해 온 것. 특히 이들 중 점이 아닌 문신이 맞다는 확인을 받은 사람들만 10명이 넘었다.

발견된 곳도 생활했던 보육시설도 모두 달랐던 이들. 이들은 1970년대 어린 나이에 입양된 여자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입양된 직후 수술을 받거나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에 입양아들은 아픈 아이들에 대한 표식이 아닐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면서 입양 시 선호하는 아이들을 표시하기 위한 표식일 것이라 추측했다.

수소문 끝에 제작진은 당시 아이들을 진단했던 담당의에게 아픈 아이들에게 표식을 한 것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담당의는 아이들의 상태를 구분해 표식을 남기기는커녕 국외로 보내는데 바빴다는 답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아이들의 상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딘가 집결지에서 표식을 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동일한 기관에서 잠시 머물렀던 입양아들, 그러나 해당 기관은 이미 사라졌으며 입양 관계자들은 이곳과 문신의 연관성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시 입양 기관에서 국외 입양 기관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편의상 고아나 기아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며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아이에게 엄마가 있는지 부모가 입양에 동의했는지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고아나 기아로 보내는 게 입양 절차에서 훨씬 쉽다"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아왔던 루스 씨. 서울 어딘가에 버려진 것으로 알고 있던 그는 입양기관으로부터 자신은 군산에 버려졌으며 전주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더 자세한 내용을 찾고자 방문한 보육원에서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화재로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1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루스 씨. 그는 자신의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입양 기관에서는 어떤 기록도 없다며 그의 정보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기념품 따위만 전달했다.

제작진은 루스 씨와 함께 전주 시청으로 향해 그와 관련된 기록을 찾았다. 하지만 시청에서는 45년 전 그가 있었던 보육원의 기록이 다른 곳으로 이관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기록이 이관된 곳은 이미 10여 년 전 루스 씨가 방문했던 그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화재로 기록이 모두 전소되었다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제작진은 화재가 났다는 해당 보육 시설에는 화재가 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화가 난 루스 씨는 10여 년 만에 해당 보육 시설 다시 찾아갔다. 미리 방문 사실을 알렸지만 보육 기관은 문이 굳게 걸어 잠겨 있었다.

입양기관에 재차 확인했지만 담당자가 해당 장소에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해당 기관에서는 자신들은 루스의 방문에 대해 들은 것도 없고 전할 이야기도 없다며 대화조차 거부했다.

제적 등본을 떼러 간 루스 씨, 그는 자신의 제적 등본이 고아 호적인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루스 씨처럼 H복지회에 있던 입양인들은 모두 고아 호적을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71년에서 74년 사이 입양된 아이들의 고아 호적의 비율은 86~90%에 달했다. 이에 전문가는 "1970년대 기아의 수는 너무나 많고, 이에 국외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경찰의 기록과 보건사회부의 기록의 기아 통계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을 확인했다. 경찰청 기아 개념으로 보면 국외 입양된 아이들은 기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전문가는 입양 기관 입장에서 경제적인 이득이 대단히 컸다며 "국가 입장에서 달러가 들어왔다. 한 아이당 3천 불 정도인데 이는 사회복지사 연봉보다 많은 돈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1970년대 루스 씨가 생활했던 복지회의 관계자는 점 문신에 대해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입양하려는 부모는 많지만 보낼 아이는 없는 아이 전쟁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가에서는 한 아이당 1450달러를 입양하는 부모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알선비, 기부금 등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서로 아이를 데려가려고 로비를 하고, 그렇게 아이를 데려오면 병원에 돈을 지불하고 부조리가 만연했다고. 그렇게 해도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돈이 훨씬 많아 그런 불법도 자행했던 것.

루스 씨와 같은 입양인들은 국가에서 국가로 생선을 운송하듯이 취급된 모든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바랐다. 자신들을 대했던 방식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말이다.

마지막으로 루스 씨는 자신이 머물렀던 보육원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보육원 뒤 작은 동산에 표식 하나 없이 묻혔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기록 속에 없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

방송에서는 끝내 점 문신을 왜 누가 남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그 답을 알고 있는 이들의 제보를 부탁했다.

그리고 지켜주지 못했고 보호해주지 못한 수많은 루스들에게 이제는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도움과 보호를 제공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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