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 칼럼] "학생도 아니고 선수도 아니게 만들고 있어요" 현장에서 토로하는 체육특기자제도의 문제점
[점프볼=조원규 컬럼니스트]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4일까지 영광에서 개최된 제49회 협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 쿼터가 끝날 때마다 남고부 코치들은 기록지를 봤습니다. 기록지를 통해 무엇을 확인했을까요?
A고는 3학년이 네 명입니다. 그중 저학년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있습니다. A고 코치는 “경기에 이기려면 저학년 선수들이 뛰어야 한다. 그런데 3학년은 대학 입시가 걸렸다. 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B고는 전력이 상위권입니다. 일찍이 점수 차를 벌린, 가비지 경기가 많습니다. 가비지 타임에 못 뛰었던 3학년들이 나옵니다. B고 코치는 “내년, 내후년을 생각하면 1, 2학년들이 나와야 하는데”라면서 말을 아꼈습니다. 역시 문제는 입시입니다. 3학년들의 경기실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C고 또한 3학년 선수가 4명입니다. “한 학년에 선수가 6명을 넘으면 안 된다. 어떻게 출전 시간을 배분해도 학부모들은 불만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말을 덧붙입니다.
“예전에는 기량이 떨어져도 가능성이 보이면 (농구부에) 받아줬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안 한다. 훈련을 더 많이 할 생각은 안 하고 민원부터 넣는다. 고등학교 코치는 대부분 1년 계약직이다. 성적을 내야 한다. (기량이) 되는데 안 뛰어줄 이유가 없다.”
물론 대부분 민원의 내용은 출전 시간이 아닙니다. 폭언, 인신공격, 차별 같은 것들입니다. 구타와 폭언은 사라져야 할 악습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민원의 순기능도 있습니다. 문제는 민원의 목적이 악습 철폐가 아닌, 내 아이의 경기 출전 시간이나 경기 중 역할에 대한 불만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방어가 힘든 민원 공격
학부모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어느 부모는 때려서라도 성적이 나오길 바란다고 얘기합니다. 어느 부모는 내 아이에게 쓴소리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양립하기 힘든 가치관의 차이는 절충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D고는 최근 이 문제로 내홍을 앓았습니다. 이 문제도 대학 진학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학부모는 대학 진학을 위해 더 강하게 선수들을 다그치길 원했다고 합니다. 연계 중학교와 초등학교 코치도 연관이 있고, 쉽게 수습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마농구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올해 계성고는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웠습니다. 3학년이 5명인데 그 선수들의 기량이 모두 우수합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것도 장점입니다. 순리대로 선수를 기용할 수 있습니다. 춘계 준우승, 협회장기 공동 3위의 준수한 성적이 나온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행 체육 특기자 제도의 가장 첨예한 이슈는 ‘체육 특기자 모집 기간 또는 체육 특기자 최종 확정 전에 특정 학생 선수의 합격을 미리 정해두는 것’은 사전 스카우트로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과거의 스카우트 비리, 불공정한 관행이 만든 산물입니다. 그런데 일선 지도자들은 이 내용이 체육 특기자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체육 특기자 제도는 전국대회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상급 학교 진학과 함께 학사학위를 주는 것으로 1972년에 도입됐습니다.
이후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지원 자격 기준을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출중한 재능과 기량이 있어도 팀이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하면 진학을 못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팀 성적으로 인해 낙오되는 유망주를 구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뀐 제도가 불공정한 입시 관행을 부추겼다는 지적입니다. 감독이 선수 선발의 전권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에 2015년 체육 특기자 입학 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2017년에는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 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골자는 입시비리 근절을 위해 운동부 지도자가 아닌 교수가 선수 선발을 하는 것,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만들기 위해 입학 전형에 학업 성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취지는 좋습니다. 다만 실행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 언급한 선수 기용입니다. 열심히 연습한 선수, 좋은 재능과 능력이 있는 선수가 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대학 진학을 위한 선수 기용입니다. 이 선수들이 한국 농구의 미래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합니다. 선수는 경기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대학 감독들도 고충을 토로합니다. 합격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선수에게 지원을 권유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위권 대학은 더 그렇습니다. 지원자 수가 적고, 합격해도 성취감보다 패배감이 큰 경우가 많다고 얘기합니다. 감독이 선수의 미래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입학을 권유하면 다를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실력과 눈높이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실력보다 눈높이가 높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제도에서 많은 선수는 합격의 기쁨이 아닌, 실패의 아픔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깜깜이 기준, 공정성의 위기
2024년 기준, 입시에서 경기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서 90%입니다. 그런데 각 학교마다 대표 선발, 개인상 시상, 득점과 리바운드 같은 개인기록 등이 어느 정도 비중으로 경기실적에 반영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합격 기준이 투명하고 공정한지 의심받는 이유입니다.
한국 18세 이하 남자농구 대표팀을 22년 만에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한 이주영, 3년 내내 주전으로 뛰며 팀의 14번 우승을 이끌었던 청소년대표 출신 김승우도 최초 합격자 명단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합격의 기준이 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체육 특기자 제도는 냉전 시대 국가주의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순기능도 있었고, 50년의 긴 세월을 지나며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한번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할 시기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으니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체육 특기자 제도가)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학생도 아니고 선수도 아니게 만들고 있다”는 모 아마농구 지도자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이유는 충분합니다.
#본 기사는 귀사(점프볼)와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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