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이·조 심판→삼겹살' 참패 부른 한동훈의 실수
정권심판론에 운동권·'이·조' 심판 대응
이재명 향한 계속된 네거티브도 역효과
"셀카 외엔 별다른 전략 없었다" 비판도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108석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됐다. 용산발 각종 악재가 불어닥친 상황에서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평가가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그러나 원톱으로 선거를 이끈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략 부재 역시 참패에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거센 정권심판론에 맞서 운동권과 이·조(이재명·조국)에 대한 심판론을 띄운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수위 높은 네거티브 발언 등이 대표적 '미스테이크'로 꼽힌다.
지난 10일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 비례대표 18석 등 108석을 얻었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구 161석과 비례대표 14석으로 단독 과반을 넘어선 175석을, 조국혁신당은 12석을 얻었다. 새로운미래와 진보당도 지역구에서 각각 1석을 얻으면서 범야권은 189석을 확보했다. 2월 민주당의 공천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을 당시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과반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비대위 성공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는 130석에도 한참 못미치는 의석에 그쳤다.
보수정당의 아픈 기억으로 꼽히는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의 103석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으나 미래통합당은 야당이었고, 지금은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 당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후 당이 재건을 거치는 과정이었고,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태호·윤상현·권성동 의원이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는 전무후무한 국민의힘의 기록적 참패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물론 보수층 일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부터 이종섭 전 호주대사 문제 등 대통령실을 둘러싼 각종 악재가 극복할 수 없던 장애물이라고 변호한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낮은 정부 지지율을 극복하고 과반 의석이라는 대승을 거둔 박근혜 비대위를 반박 사례로 들 수 있다. 국민의힘과 한 전 위원장의 전략 실패 역시 패배의 주된 원인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선거 캠페인 자체를 잘못 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운동권·이재명·조국 향한 심판론
정권심판론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가장 뼈아픈 지점이다. 박근혜 비대위의 성공 배경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진보적 의제 선점이 있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정권심판론도 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여당 속 야당 포지션을 택하면서 이 전 대통령과 당을 철저히 분리시켰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혁신하려는 이미지를 표출했고, 보수정당에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다를 가져오기도 했다. 중도층 공략에도 결국 성공했고 152석 확보라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한 전 위원장은 중도층을 포섭하지 못했다. 젊고 유능한 이미지를 내세워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노렸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권의 실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개혁 의지를 보였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한 전 위원장의 총구는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에게 향했다.
냉정히 봤을 때 지난해 12월 26일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86 운동권 청산론을 꺼낸 것부터 첫 스텝이 꼬였다. 운동권은 현재 국민들이 체감하는 민생 이슈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고, 왜 이들이 청산돼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나 명분을 한 전 위원장은 주지 못했다. 이념적 이슈만을 부각하는 역효과를 낳음과 동시에 민주당이 띄운 '검사독재 청산'이라는 프레임에 가려졌다. 또 민주당이 운동권의 대표 격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자체적으로 컷오프 하면서 점차 설득력을 잃게 돼 실패한 메시지가 됐다. 선거판을 주도할 의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거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를 겨냥해 꺼내든 '이·조' 심판론 역시 그다지 소구력이 없었다. 이 대표와 조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전면에 부각해 야당이 내건 정권심판론에 맞서겠다는 의도였으나 이 역시도 통할 리가 만무했다. 두 사람 모두 일종의 검찰 수사로 인한 피해자로 대표되는 인물이기에 살아있는 권력에선 한발짝 벗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대표의 법적 문제는 지난 대선 때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어왔기에 2년이 지난 지금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지난해 영장심사까지 거쳤고, 이 대표가 한참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조 대표 역시 2심 유죄 선고에 이어 대법원의 판단만 남은 상황이라서 심판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통하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들에 대한 심판론은 김건희 여사의 법적 문제를 되려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 평론가는 "이 대표, 조 대표의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모두 리스크가 반영됐던 이슈다. 이걸 꺼내 드는 순간 일종의 물타기로 비쳤다. 여당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인데 이곳으로 문제를 돌리면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졌다"라며 "운동권 심판론 역시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임 전 실장 등 몇몇을 내치면서 자체적으로 희석됐다"라고 강조했다.
◆대파엔 입 닫고, 삼겹살은 덥석 물고
이 대표를 향한 거센 네거티브 역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한 전 위원장은 매일 아침 언론과의 도어스테핑부터 공식 선거운동 종료 시점까지 이 대표에게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이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거론하면서 "공금 법카(법인카드)로 1000만 원치 과일을 사 먹은 게 사실이냐. 명절 제사상도 법카로 했다는 의혹이 사실인지도 묻겠다"라고 발언했던 것이나 "만약 검사독재가 있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게 대표적이다.
지지층 결집과 동시에 정권심판론으로 흘러가는 선거 국면을 '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로 만들기 위했던 것이지만 이 대표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전략은 크게 통하지 않았다.
선거를 3일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이 대표를 향해 "왜 굳이 삼겹살을 안 먹고 삼겹살 먹은 척하나"며 삼겹살·소고기 문제를 거론한 것 역시 대표적인 패착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이 3주 가까이 이슈화되는 상황에서 집권여당이라면 마땅히 제시해야 할 민생 문제의 구체적 대안이나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대파라는 국민적 화두 대신 삼겹살이라는 일종의 네거티브를 끝까지 잡았던 셈이다. 최 평론가는 "집권여당으로서의 무게감, 신뢰감이 없었고, 가벼운 캠페인이 됐다"라고 언급했다.
◆"전국 돌아다니며 셀카만" 비판도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과 한동훈 전 위원장에게 구체적 전략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총평했다. 특히 정치신인은 팬과 인기, 인파 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몇몇 정치인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셀카'말고는 특별히 기억이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선거를 지휘하는 자리라면 자신 개인을 향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인기를 당을 향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한 전 위원장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1일 대구시청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잘못된 선거였다"며 "정권의 운명을 가름하는 선거인데 초짜 당대표에 선거를 총괄하는 사람이 또 보선으로 들어온 장동혁이었고, 거기에 공관위원장이란 사람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홍 시장은 "총선 기간 여당 선거 운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었느냐. 동원된 당원들 앞에서 셀카 찍던 것뿐이었다"라며 "총선이 끝나면 황교안 전 대표 꼴 난다고 예상했다. 그런 사람에게 총선을 총괄 지휘하게 한 국민의힘도 잘못된 집단이다. 깜도 안 되는 것을 데리고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나는 한동훈이 정치적으로 죽지 않길 바란다. 그의 사고방식, 깐족 말투, 턱짓, 셀카놀이도 변함없이 계속하길 바란다"며 "너무 오래 쉬지 말고 훌훌 털고 조속히 다시 나오길 바란다. 한동훈, 건투를 빈다"라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의 전략 부재를 비꼰 것이다.
박상병 평론가는 "국민들은 한 전 위원장이 신선하고, 소통 능력도 출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 전 위원장은 그런 신선한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도 아닌데 개인 인기에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 운동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하면서 혼자만 돋보였다"라고 설명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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