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신랑감 찾아요”...수년째 ‘대리 맞선’ 나선 이 나라 부모들 심리 [한중일 톺아보기]
중국 상하이에서 결혼상대를 찾고 있는 청년들의 신상 프로필 입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결혼정보회사발 프로필과 매우 흡사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중국은 이 같은 사항이 적힌 전단지를 나이 지긋한 부모들이 직접 들고 동분서주 하고 다닌다는 것 정도입니다.
청년 혼인율 문제가 한국 이상으로 심각한 중국에서 결혼을 못(안)하고 있는 자식들 대신 부모들이 직접 짝을 찾아주려 나서는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상하이를 대표하는 대규모 쉼터인 인민공원에는 주말이면 자식들의 프로필이 적힌 전단을 들고 신랑 또는 신부 찾기에 나선 부모들이 운집한 진풍경이 벌어지곤 합니다.
중국에서 처음 부모들의 ‘대리 맞선활동’이 나타난건 약 20년 전으로, 현재 인민 공원의 ‘맞선코너’(相亲角)는 이같은 이벤트가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상하이의 상징적 장소가 됐습니다. 초기에는 상하이시 거주시민들만 참여했다고 하나, 점차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까지 찾아오는 부모들이 늘면서 이들이 자식을 대신해 구혼활동하는 모습은 관광객들에게까지 알려질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후커우는 소유자의 신분과 거주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든 증명서 이지만, 중국에서는 거주지 이동은 물론 교육, 의료, 복지 혜택에 이르기 까지 제한하는 역할을 해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어도 농촌 등 다른 지역 후커우를 갖고 있을 경우 겪는 불편함과 불이익은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게다가 후커우는 대물림 되기 때문에 상하이 후커우를 갖고 있는 청년들은 남녀불문 모두 결혼 상대에게도 상하이 후커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겁니다.
특히, 남자의 경우 상하이 후커우 보유뿐 아니라 상하이에 집을 갖고 있느냐가 최중요 요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후커우에 따라 부모들의 대리 맞선활동에도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곳 인민공원에서 가장 접근성과 전망이 좋은 지역은 상하이 호커우를 보유한 부모들의 영역입니다. 후미진 안쪽으로 들어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일 수록 지방 후커우를 가진 부모들이 몰리게 되는 식이죠. 다같이 상하이 공원이라는 공공장소를 사용 하더라도, 마치 신분이 나뉘듯 후커우에 따라 활동 공간이 구분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들이 우산 대신 계단위나 거치대, 혹은 그냥 땅바닥 위에 전단지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대리 맞선 활동중이던 부모들끼리 시비가 붙어 우산을 들고 서로를 때리는 상황이 발생하자, 당국이 안전을 위해 금지시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근에는 한 사람이 수십명의 전단지 프로필을 펴놓고 있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은 부모들로부터 보수를 받고 그들 자녀들의 맞선활동을 대신 해주는 업자들 입니다. 이들은 보통 전단지 1장당 1달에 150위안(약 3만원)씩 받으며 20장 정도를 맡곤 하는데, 월평균 3000위안(약 60만원)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지 않은 액수지만 공원에 앉아 관심을 보이는 부모들에게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이 사실상 업무의 거의 전부인 데다, 상하이 고령자 평균 연금이 4500위안(약 8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수입원 입니다.
이처럼 나이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신해 결혼상대를 찾아 나서는 모습은 상하이 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다만, 부모들 상당수는 자녀들의 동의 없이 활동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대 외동딸을 위해 주말마다 전단지를 들고 인민 공원에 나간지 3년이 넘었다는 한 60대 여성은 “중국은 전국적으로 결혼전령기 남성숫자가 여성보다 훨씬 많다지만, 상하이 같은 도시는 반대” 라며 운을 뗏습니다. 이어 “우리딸도 그렇지만 여자쪽에서는 아무래도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나 수입이 높은 남성을 원하다 보니(눈높이에 맞는 상대를 찾기가)갈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산아제한과 남아선호에 따른 성비 불균형으로 현재 전국의 결혼 적령기 미혼 남성수가 여성보다 약 3000만 명 이나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상하이 같은 주요 대도시 결혼시장은 여성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입니다.
이 여성은 부모들이 아무리 발벗고 나서도 중요한건 당사자 의지가 아니냐는 질문에 “내가 아무리 조급해한들 본인 의지가 없으면 소용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제 슬슬 공원에 나오는 것도 관둬야하나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딸에게 잔소리 하면 오히려 결혼의 단점을 설명하며 내게 설교하려 든다” 고 덧붙였습니다.
이 여성은 “예전에는 결혼 안한 자식때문에 괜히 위축되곤 했는데, 지금은 혼기가 지난 자녀가 있는 부모가 흔하다보니 나도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인민공원의 한 관리자는 ‘동류의식’ 을 들었습니다. 자식이 인연을 찾는데 실패하더라도 같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는 겁니다. 그는 “여기 오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과 동변상련 할수 있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대리맞선 현상을 수년간 연구해온 상하이대학교 사회학원 지잉춘 교수는 “인민공원에 왔던 부모들을 조사한 결과, 거의 절반이 자식이 독신으로 사는 걸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특히 아들보다 딸들 부모가 자식이 혼자사는 걸 수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상당수 부모가 대리맞선을 통해 자식에게 꼭 좋은 짝을 찾아주겠다는 생각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하나 뿐인 내자식이 결혼을 못(안)해도 괜찮아. 이 사람들 대부분 그런 걸” 이라고 위로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자식 결혼을 위해 부모가 대리 맞선까지 나서는 모습은중국에 앞서 2000년 무렵 일본에서 나타났고, 한국에서도 이들 두 나라 보다는 적지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부모들이 대리맞선에 나서는 모습은 전통과 가치관 등 문화 탓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다만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집단 대리 맞선 현상이 진정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라기보다 사회적 압력 이나 부모로서의 책무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할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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